에베레스트에서 비운의 산악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9일 네팔 에베레스트(8848m)를 등반하던 ‘2012충남고등학교에베레스트원정대’의 송원빈(45)대원이 하산 도중 체력고갈과 탈진으로 조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고OB산악회의 윤건중씨는 “베이스캠프로부터 ‘19일 오전 7시(현지 시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하산하던 송 대원이 약 8600m 지점 등반 루트 상에서 쓰러져 움직일수 없게 됐다’는 말을 함께 등반한 김영일 등반대장이 무전으로 알려왔다”고 20일 전했다.
21일 현재 에베레스트 정상 바로 아래 힐러리스텝(8750m)부터 남봉(8600m) 사이에는 송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등반자가 7명이나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20일 오전(현지 시간) 캠프4에 있던 국제구조대 소속 4명의 셰르파가 이들을 구조하러 떠났으며,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8600m 이상에서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상태는 절망적이라는 게 산악인들의 시각이다. 산악인 강연룡(42)씨는 “7000m와 8000m 이상은 기온차가 완전히 다르다”며 “몸에서 스스로 발열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8000m 이상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면 사실상 (생존이) 어렵다”고 말했다. 송씨는 대학 졸업 후 고산 등반 활동을 접었으나, 모교 50주년을 맞아 꾸린 에베레스트원정을 위해 다시 산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히말라야등반 웹사이트 익스플로러스웹에도 이날 에베레스트에서 사고가 있었음을 알리는 소식이 올라와 있다. 19일 힐러리스텝(8750m) 직전에서 하산한 빌이라는 남자는 “날씨가 너무 험악(horrible, wind blowing, snowing, miserable)했다. 올라가는 중에 쓰러져 있는 몇 명(a couple bodies)’을 지나쳤으며, 이후 되돌아가야겠다고 결정했다”는 내용을 베이스캠프 동료에게 전했다고 20익스플로러스웹은 밝혔다.
올 봄 시즌 에레베스트 정상으로 가는 루트는 기상 악화로 인해 예년에 비해 1주일 가량 늦게 열렸다. 특히 지난 19일 오후에는 강풍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쳐 최악의 기상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캠프4(8000m)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극심한 정체 현상까지 빚었다. 19일 오전, 약 100~150명의 인원이 8000m 지점에서 정상까지 늘어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베레스트 캠프4는 사우스콜로 불리는 비교적 평평한 지점에 구축되며, 정상 공격을 위한 전초기지가 된다. 보통 자정께에 캠프4를 출발해 익일 정오께에 정상에 선 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캠프4로 되돌아와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지난 1996년 일어난 에베레스트 최대의 인명 사고와 흡사하다. 당시 상업등반대를 비롯해 너무 과다한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등정 시간이 계속해서 늦어졌으며, 하산길에 폭풍우와 제트기류를 만나 결국 12명의 산악인과 상업등반대원이 숨졌다. 상업등반대란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 전문산악인그룹으로, 네팔 카트만두를 비롯해 미국·유럽 등에 다수의 에이전시가 있다. 보통 한 사람당 3000만원~1억원의 돈을 받는다. 1996년 사고는 미국의 산악인이자 저널리스트로 당시 현장에 목격한 존 크라카우어가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라는 책으로 남겼다.
에베레스트 정상 아래 8600m~8750m은 ‘마의 능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점까지 올라서면, 정상에 눈앞에 보이기 때문에 등정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어렵다고 많은 산악인들은 말한다. 그러나 지상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기 때문에 급격히 저하된 체력으로 희박한 공기와 싸워야만 하는 험난한 구간이다.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 중 설맹으로 멈춰선 고 박무택 대장도 이 지점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라는 말로 유명한 조지 말로리 또한 1924년 등반 도중 이 부근에서 실종됐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 출처= ‘희박한 공기 속으로’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