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상인이 빙과류 업체가 소매점의 판매가 결정에 개입,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소매점 냉장고에 진열된 아이스크림. IS포토
"아이스크림을 팔 수도, 안팔 수도 없어 답답합니다."
서울 노원구 A슈퍼마켓 주인 이영근(45·가명)씨는 아이스크림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하소연했다. 한때 ‘반값 할인’ 등 편법을 동원해 아이스크림만은 대형마트에 비해 경쟁력을 가졌지만 그것도 옛말. 이씨는 올해 초부터 빙과류 업체들이 소매점의 아이스크림 판매가격을 강제로 정하고 있다고 일간스포츠에 제보했다. 그는 "이미 ‘50%할인 판매’가 소비자에게 강하게 인식된 상태에서 할인을 안할 수도 없지만, 마진이 엄청나게 줄어 세일을 하면 남는 게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소매가, 본사가 정한다?
일부 소매점의 제보처럼 빙과류 업체들이 아이스크림 가격을 강제로 정했다면 현행 공정거래법 ‘재판매가격유지행위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 이 조항에 따르면 물건을 만든 제조업체(본사)는 영업소로 물건을 판 뒤에 영업소가 소매점에 되파는 가격이나 소매점의 판매가를 임의로 정할 수 없다.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경기도 부천시에서 6년간 B슈퍼마켓을 한 김모씨는 "거래하던 영업소에서 아이스크림을 할인해서 팔지말라고 했다. 영업소에서는 본사로부터 내려온 지침이니 지켜달라고 경고했다"면서 H제과를 해당 업체(본사)로 거론했다. 김씨는 "가격때문에 말이 많아 H제과 영업소와 계약을 끊고 다른 중간 도매상으로부터 아이스크림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H제과 뿐만 아니라 다른 빙과류 업체도 비슷한 지시를 했다는 게 일부 소매점의 주장이다. 서울 성북구 C마트 박금자(38·가명)씨는 "몇 달전부터 영업소에서 일정 가격에 아이스크림을 팔라고 지시했다. 본사들로부터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소매점, "마진 100원 남기고 팔기 어렵다"
소매점의 아이스크림값이 본사 혹은 영업소에 의해 정해지면서 소매점 마진이 5분의 1가량으로 줄어 소매상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스크림 가격을 소매점이 자유롭게 정해 마진폭을 조정할 수 있었다. 반값 할인도 이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본사에서 무조건 1000원(바 형태의 아이스크림)이나 5000원(B사의 떠먹는 아이스크림)으로 가격을 묶어놓고 중간 거래가격을 인상해, 아이스크림을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 소매점 주인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L제과의 아이스크림은 지난해 중간 거래가격이 580원이었지만 현재는 680원가량으로 올랐다. 여기에 전기세 등을 포함하면 소매점의 마진은 100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노원구 D마트 최락연(60·가명)씨는 "공장출고가를 올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중간 거래가를 올려서 본사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 소매점 마진은 줄고 본사만 재미를 보고 있는 꼴"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경쟁과 관계자는 "본사가 대리점 등에 '일정 가격을 받아라'는 내용의 이메일이나 공문을 보냈다면 재판매가격유지행위 금지 조항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슈퍼마켓이나 동네 상인들이 본사와 영업소 간의 계약 내용이나 공문 등을 확인할 수 없어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H제과 측은 "회사에서 할인폭을 조금 줄여달라고는 했지만 가격을 정해 팔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다른 빙과류 업체 관계자는 “아이스크림 유통과정을 따져보면 일선 소매점이 판매할 제품을 고를 수 있어 오히려 제조업체가 약자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업체가 소매점의 판매가를 강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