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1시 서울 대림동 코리안탑팀 체육관 앞. 빨간색 스쿠터를 탄 청년이 나타났다. 평범한 체격에 야구 모자를 눌러쓴 그는 한국인 최초 UFC 챔피언 도전자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청년같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뿐 아니라 동양인 중에서도 가장 세계 정상에 가까운 싸움꾼이다. 26세 청년 정찬성. 미국인의 심장을 훔친 ‘한국산 좀비’를 만났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나. 겉보기엔 그냥 동네 청년 같다.
“가끔씩 심심하면 스쿠터를 타고 집 근처 뚝섬 고수부지도 돌아다닌다. 여름이라 사람들이 많은데도 한 명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지나가던 팀 동료 김두환 선수를 가리키며) 쟤처럼 외모도 좀 우락부락해야 사람들이 알아보는데, 난 정말 평범하지 않나. 요즘처럼 시합이 없을 때는 나 스스로도 내가 격투기 선수인지 가끔 까먹는다.(웃음)”
-지금까지 UFC 챔피언에 도전한 동양인은 4명. 모두 일본인이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를 체격이나 기술이 아닌 근성과 적지의 불리함에서 찾았는데.
“기술은 일본이 오히려 미국보다 좋다. 일본인들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다. 그런 문화가 격투기에서는 좋지 않다. 이 얘기는 일본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말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건 근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근성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인종적인 한계는 없나. 선천적인 파워가 서양인에 비해 부족하다던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도 안 되지 않나. 그런데 UFC 선수는 벌써 3명이다. 적은 게 아니다. 선천적 파워를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첫 경기 기억하나? 데뷔전이 2007년 6월, 딱 5년 전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슈퍼 삼보 페스티벌이란 대회에서 이형걸이란 선수와 붙었다. 사실 이 선수와 주짓수 대회에서 두 번 만나서 다 졌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를 기억 못하더라. 원래 진 사람만 기억하지 않나. 결국 MMA에서 두 번 붙어서 다 이겨버렸다.”
- 최근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약물 검사에 걸려 UFC 헤비급 타이틀전이 취소됐다. 약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외 나가보면 외국 선수들이 약물을 한다는 소문을 많이 접한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약물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나 역시 그렇다. 지금처럼 약물 검사를 느슨하게 하면 똑같은 노력을 하고도 우리만 불리하게 된다. 약물 검사를 더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나도 미국 경기를 많이 뛰어봤지만 이번에 메인이벤트 하면서 처음으로 약물 검사를 받았을 정도다. 더 자주, 엄격하게 해야 한다."
-진주에서 초등학교 시절 ‘짱’이었다던데.
“맞다. 그런데 나 혼자 짱이었던 건 아니고, 잘 싸우는 애들 몇 명이 있었다. 우리끼리는 서로 건드리지 않았다. 괜히 붙었다가 한 밑천 드러나면 쪽팔리지 않나.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딱지를 치며 놀고 있는데, 어떤 덩치 큰 녀석이 와서 이유 없이 뺐어가려고 하더라. 친구들도 많이 있는데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었다. 결국 흠씬 패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근처에 사는 중3이었다. 어릴 적에 진짜 많이 싸웠다. 초등학교 때만 20~30번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전승했다. 중학교 가선 덩치가 안 커져서 맞기도 했지만. 커서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는 모르는데 그쪽에서 나를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길가에 지나가다 보면 펀치 기계 있지 않나? 내가 (설문에서) 어깨에 자신 있다고 썼는데, 동네에 있는 펀치 기계 기록을 다 깨고 다녔다. 물론 지금은 팀 동료 (양)동이 형, (임)현규 형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웃음)"
- 중학교 시절 덩치가 작아서 맞기도 했다던데, 덩치가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박치기다. 나보다 큰 상대 만나면 무조건 옷 부여잡고 들이받았다. 그럼 상대방이 코피가 난다. 어릴 적엔 코피 나면 지는 거 아닌가?(웃음)”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무얼 보나.
“성격이다. 아무리 예뻐도. 까칠하면 거리를 둔다. 물론 나도 남자니까 예쁜 게 좋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화려할 필요는 없고 뚱뚱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뚱뚱하면 자기 관리를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 까칠한 것과 도도한 것은 다르다. 도도한 것은 예의와 매너를 갖추고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까칠한 것은 무조건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 것이다. 도도한 건 좋다."
-결혼은 언제 하고 싶나.
“당장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 딴 짓 안하고 집중할 것 아닌가. 특별히 젊을 때 못 놀아서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은 안한다. 내 목표도 결국은 좋은 아내, 아들 딸 낳아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잘 눈에 띄지는 않더라. 내가 은근히 눈이 높은가보다.”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고, 연패를 하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국 UFC 챔피언 도전권을 따냈다.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나는 운좋게도 좋아하는 격투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은 해야 한다. 계속 하다 보면 꼭 그걸로 성공을 못하더라도 또 다른 쪽으로 일이 잘 풀린다. 그런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다른 길도 열린다. 어차피 우리 세대는 100살까지 산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