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이 음악과 함께한 30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1982년 MBC '신인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10여년을 철저하게 무명으로 외면받았다. 히트곡인 된 '장난감 병정'도 1990년 발표 당시에는 반응이 없었다. 박강성을 키운 것은 9할이 라이브 무대였다. 방송 출연에 관심이 없던 그는 신촌·대학로 등지에서 노래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뛰어난 가창력은 결국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서서히 입소문이 났고, 찾는 곳이 늘었다.
90년대 태동한 미사리 라이브 카페는 박강성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미사리의 서태지'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미사리의 성장과 함께 스타가 됐다. 박강성의 노래 인생 30년을 '희노애락'으로 풀어봤다.
-데뷔 30년을 맞은 소감은.
"시간이 참 많이 흐르기는 했다. 하지만 30주년이건, 40년이건 해가 더해져 이름 붙여진 기념일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 특별한 감정도 없다. 아직도 현역 가수로서 팬들과 어울리며 공연할 수 있다는 점이 고마울 뿐이다."
-음악 인생을 희노애락으로 돌아보자면.
"무대 위에서 노래한 매 순간이 행복했다. 미사리 통기타 가수를 벗어나, 대형 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났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화는 잘 내는 편이 아니다. 단 노래와 관련해서는 내 자신에게 엄격하다. 노래가 잘되지 않을 때는 내 목소리가 듣기 싫을 정도로 화가 난다. 돈 때문에 노래를 해야 할 때는 슬펐다. 명예는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도 많았다. 포장마차에서도 노래해봤다. 소주 마시는 사람 앞에서 야유를 듣고 모멸감을 느낀 적도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가 노래를 하는 이유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과 산책하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노래가 내 전부는 아니지만, 가족에게는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처음부터 대박 가수는 아니었다.
"1982년 데뷔 한 후 10여 년간 히트곡이 없었다. 90년에 '장난감 병정'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철저한 무명 가수였다. 요령이 부족했다. 방송에서 농담도 하고 개그도 해야 되는데 그런 성격이 못됐다. 80년대는 아직 가수들이 천대받을 때다. 술집에서 노래하면 다른 가수보다 10만원 더 받는 게 자존심이던 시절이다."
-미사리 라이브공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미사리 때문에 뜬 것은 아니다. 1995년도에 단독 콘서트를 하고, 라이브 앨범을 냈는데 소리 소문 없이 입소문이 났다. '장남감 병정'을 가지고 대학로·신촌에서 끊임없이 공연을 하면서 저변을 확대했다. 그 인기에 미사리가 불을 붙여준 것이다."
-미사리에서의 추억도 많겠다.
"미사리 가수라고 하면 낮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공연장은 매일같이 전쟁터다.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곳이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분위기에 적응을 잘 해야 산다. 관객 몰입이 되지 않으면 레퍼토리를 순간적으로 바꿔야한다. 그걸 못하면 유명 가수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난 그 감각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가장 오래 버틴 것 같다. 요즘 미사리는 예전만 못하다. 나도 공연·방송 활동에만 매진하다보니 못 간지 꽤 됐다."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6년 전쯤에 코엑스에서 했던 최악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2회 공연에 1만2000여명을 동원했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근데 준비가 미흡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수가 직접 나서서 챙겨야 했을 정도로 스태프와 손발이 맞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공연이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부분에서의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
-완벽주의자인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프로이기 때문에 실수는 최소한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연의 고질적인 문제는 충분한 연습이 없다는 것이다. 공연의 흥행만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연습이 적어질 수밖에 없고, 리허설도 당일에 한다. 그런 부분이 보완이 돼야 공연의 질이 높아질 것 이다."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준비했다.
"내 히트곡은 물론, 조용필 선배님, 고 김현식 선배님, 김광석의 노래를 준비했다. 또 내 가수 활동의 동기부여가 된 윤복희 선배님과 듀엣으로 '여러분'을 부른다. 윤복희 선배의 무대는 지금 봐도 굉장하다. 일흔가까이 되셨는데도, 여전히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2014 아시안게임 홍보대사도 맡았다.
"내가 워낙 운동 마니아고 전국에서 콘서트를 하다보니까 인천 아시안게임 홍보에 도움이 된다더라. 이미지 관리를 잘한 덕이 아닐까. 하하. 앞으로 콘서트틀 하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이다."
-'라이브의 귀재'가 꼽는 최고의 라이브 가수는.
"가수들 마다 개성이 있는데 최고는 꼽기 힘들다. 조용필 선배와 이문세 선배 공연이 좋고, 후배 중에서는 이승철·김범수·바비킴·변진섭을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 중에서는 소녀시대·빅뱅·2NE1이 최고다. 퍼포먼스도 좋고, 라이브도 꽤 한다. 흔한 아이돌과는 다른 면이 많이 보여서 좋다. 아직도 공부하는 셈치고 가수들 공연을 몰래 보러 다닌다."
-앞으로 그리는 음악은.
"여러 가지 장르의 곡을 하겠다. 트로트에도 도전할 것이고, 대곡 스타일도 해보고 싶다. 매너리즘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젊은 작곡가에게도 지도 받을 생각이 있다. 도전할 것은 많다."
-노래는 언제까지 할까.
"난 아직 젊다. 미국의 로드 스튜어트나 에릭 크립튼은 일흔이 다된 나이에도 새 앨범을 몇 백 만장씩 판다.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난 아직도 노래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도저히 부를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는 가수로 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