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11월12일)까지 똑같은 두 KIA 선수의 모습이 3년 차이를 두고 묘하게 겹친다. 2009년 4월 LG에서 KIA로 이적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김상현(32)과 지난 22일 삼성에서 KIA로 트레이드돼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조영훈(30) 이야기다. 조영훈은 지난 28일 잠실 LG전 6회초 이성진을 상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만루 홈런을 날렸다. 팀을 옮긴지 6경기 만에 터진 자신의 생애 첫 그랜드 슬램. 김상현 역시 KIA 이적 후 6경기 만인 2009년 4월26일 대구 삼성전에서 이적 후 첫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한 경험이 있다. 만루홈런은 데뷔 후 두 번째였다. KIA 외야수 김원섭(34)은 "김상현과 조영훈이 목소리까지 닮았다"고 했다.
2군에선 홈런왕, 1군에선 계륵
두 선수는 퓨처스(2군) 북부리그 홈런왕 출신이라는 공통점까지 가지고 있다. 김상현은 2006년 상무에서 23개의 아치를 그려 부문 1위에 올랐다. 조영훈은 2년 뒤인 2008년 경찰야구단 소속으로 24개의 대포를 가동해 홈런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1군에서 각각 정성훈(32·LG)과 이승엽(36·삼성)에게 가려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정성훈보다 1년 늦은 2000년 해태에 입단한 김상현은 같은 포지션(3루수)의 정성훈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하다 2002년 LG로 트레이드됐다. 그러나 7년 뒤 정성훈이 프리에이전트(FA)로 LG 유니폼을 입는 바람에 또다시 KIA로 이적했다. 그렇게 쫓기듯 입은 KIA 유니폼이 그에게 인생역전의 기회를 줬다. 김상현은 2009년 3관왕(홈런·타점·장타율)을 차지하며 팀 우승을 이끌고 그해 최고의 '신데렐라'가 됐다.
조영훈의 경쟁자는 '국민타자' 이승엽이었다. 그는 지난해 삼성에서 가코와 채태인이 전력을 이탈했을 때 1루수로 나서 삼성의 우승에 힘을 보탰으나 올 시즌 이승엽의 국내 복귀 뒤 또다시 백업으로 밀렸다. 조영훈은 KIA로 이적한 뒤 "나의 부족함 때문이지만 어쨌든 삼성에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KIA에서는 꾸준한 성적을 올려 팀의 주역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09년의 김상현처럼, 자신도 KIA에서 성공신화를 쓰고 싶다는 의미다.
간절한 마음이 닮았다
김상현(오른손)과 조영훈(왼손)은 좌·우도 다르고 타격 스타일도 다르다. 김상현은 장타에, 조영훈은 정교한 타격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KIA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길을 걸어온 두 선수는 똑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적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상현은 2009년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을 수상한 뒤 "나처럼 9년간 2군에 머문 선수도 MVP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밝혔다. 조영훈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그는 "정든 팀(삼성)을 떠나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사실 삼성에서는 단 한 번도 풀타임으로 뛰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기대를 많이 받고 기회를 집중적으로 얻는 것도 처음"이라며 "나 자신을 시험해 볼 기회다. 정말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조영훈이 '김상현처럼' KIA의 상승세를 이끌고 올 시즌을 그의 인생의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까. 2009년 김상현 이적 당시 KIA는 7위에 머물고 있었으나 끝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주 조영훈이 왔을 때 KIA의 순위도 7위였다. 조영훈은 "여기가 내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을 곳이라고 생각하고 뛰겠다"고 했다. KIA는 조영훈이 합류한 뒤 치른 6경기에서 1패 5연승을 거두고 28일 6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