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시는 당나라 시인 최국보의 ‘소년행’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리가 보는 겸재 정선의 '소년행시의도'에 적혀있는 화제의 본 출처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시서화 일체사상이 유행했다. 이는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하나로 보고 이들이 어우러지는 것을 최고로 치는 미학이 유행했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선비들이 서로 모여 시짓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 쓰는 것이 놀이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이 그림 또한 소년행이라는 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하여 소년행시의도라 불린다.
본래 소년행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봄날의 유흥을 위해 말을 타고 술집을 향해 달리는 소년의 마음과 그 마음을 은유하고 있는 봄풍경이다. 시에 나오는 버들가지는 술집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심어 놓는 나무이며 장대는 한나라 때 술집이 많은 동네로 유명한 곳이었다. 겸재의 소년행시의도에서는 의복을 갖춰 입은 소년이 화려한 색의 안장을 얹은 백마를 타고 장대가를 향해 가는 와중에 버드나무를 보는 장면으로 소년행을 그리고 있다.
산호채찍을 들 정도로 부유한 집 젊은이가 호기로 채찍을 버리자 말이 잘 가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만을 보고는 이 젊은이가 과연 장대가를 향해 가는 것인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봄날을 노래하는 시를 바탕에 깔고도 버들가지에 푸른색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오래 보고 있노라면 겸재가 어디에다 춘정을 그렸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버들가지를 보는 소년의 눈빛이다. 버드나무를 보고 있는 앳되고 젊은 소년의 눈에는 풍류와 유흥이 가득한 술집을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차 있다.
사대부이자 성리학자이기도 한 정선의 그림에서 춘정은 신윤복처럼 도발적이고 유혹하는 듯한 야릇함으로 표현되는 대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서책에 파묻혀있어도 어쩌지 못해 새어나오는 삿된(보기에 하는 짓이 떳떳하지 못하고 나쁜) 욕망 같은 것으로 표현되었다. 비록 말에 대한 표현에서 공재 윤두서의 철저한 관찰과 사생에서 오는 정확함은 결여돼 있지만 그림 자체를 두고 말하자면 뜻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에는 뒤지지 않는다.
겸재는 인왕산과 금강산과 같은 명산과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즐겨 그릴 때에도 실제 풍경을 보고 사생했지만 자신의 개성과 뜻을 한껏 담아 재구성해 그렸다. 그를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로 부르지만 겸재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을 사실이라고 여기기보다 뜻을 전하는 것을 더 사실이라 여긴 사대부다. 그래서 겸재는 시의 어구에 상응하는 실제 봄풍경을 그리지 않고 소년의 눈빛을 통해 춘경을 표현한 것이다.
▲양희원(34) KRA한국마사회 교관
그림속 주인공은 백마를 탔는데 부자이거나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마는 희귀 했고 모색이 아름다워 권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일반적으로 백마의 경우 갈기나 꼬리가 흰색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화에서는 갈기와 꼬리를 검은색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그림 같은 말이 현실에도 있을 수 있지만 확률은 극히 작다. 그림속 말은 측대보를 하고 있다. 측대보란 오른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이 함께 앞쪽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대부분의 말에 측대보를 가르치지 않고 마차를 끄는 말만 측대보 훈련이 진행된다. 하지만 과거 몽고병사들은 측대보를 훈련시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 나와있는 말의 측대보는 실수로 보인다. 작가가 직접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작가가 말의 걸음을 혼동해 실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의 품종은 과거 조선·고려시대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조랑말 계통인 것으로 보인다. 말은 사람과 다른 사물에 비해서도 작다. 그러나 비교적 얼굴이 길고 체형이 날렵한 것으로 보면 조랑말이 아닌 북방계통의 말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