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바쁜 세상, 제사도 많이 간편해졌다. 과거에는 아버지·어머니 제사를 따로 지냈지만 최근 들어 부모님 제사를 같이 지내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형제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일이 바빠 연락도 힘들어 1년에 한번 모이기도 하늘에 별 따기란 얘기다. 사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특별히 가정에 문제가 없는 한 제삿날을 하루에 합쳐 올려도 된다. 우리 가족도 10년 간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를 따로 올렸지만 올해부터 자연스럽게 아버지 제삿날에 어머니도 같이 모시고 있다.
하지만 A씨 가족은 달랐다. A씨는 부모님 제삿날을 하루로 합치자는 형제들 성화에 고민이 많았다. “저도 부모님 제사를 합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생전에 워낙 사이가 좋지 않으셔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A씨는 고민 끝에 부모님 제삿날 문제를 당사자인 부모님께 직접 물어보고 싶어 내게 구명시식을 청했다. “어머님 성격에 아버지 제삿날로 합치자고 하면 난리가 나실 겁니다. 어머니를 잘 좀 설득해 주십시오.”
구명시식을 시작하니 과연 그랬다. A씨 부모님 영가는 같이 앉아 있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틀림없이 이혼할 부부였다. 옛날이니 ‘이혼’ 개념이 약해 몇 개월씩 말을 안 해도 자식들 키우며 한 집에 살았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A씨 형제들 얘기를 했다. 자손들이 워낙 바쁘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 자주 모이기 힘드니 1년에 한 번 아버님 제삿날에 부모님 제사를 같이 올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흔쾌히 OK했지만 역시 어머니 의사가 문제였다.
어머니 영가는 “나는 생전에 단 한 번도 내 주장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죽어서 겨우 내 제삿날 내 상을 따로 받아왔는데 다시 남편과 겸상을 하라니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라며 안색을 바꿨다. 어머니 영가의 태도는 완강했다. 역시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자손들이 일일이 나와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해 어머니 영가에게 하소연하자 겨우 꼿꼿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 않다는 부모님 영가를 자세히 살펴보니 자손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다.
부모님 영가는 표현만 안했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매일 자식들에게 남편 욕, 아내 욕을 하며 헐뜯었지만 이 모든 게 옛날식 애정표현이었다. 특히 아버지 영가는 어머니 영가의 잔소리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 특별히 면박도 주지 않았다.
A씨는 구명시식 내내 “어머니께서 많이 화나셨나요?”라고 물었지만 실상 그렇게 역정을 내지도 않으셨다. 어머니 영가는 제삿날을 합치는 것을 허락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자신의 제삿날에 음식은 차리지 말되 형제들이 각각 집에서 자신을 생각하며 기도를 해줄 것을 당부했다. 일종의 ‘메모리 데이’였다.
부부의 속마음은 오직 부부만이 안다. 자식들은 부모님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하늘이 내린 궁합이었다. 부모님 제사를 하루로 합칠 고민을 하신다면 ‘아버지 제삿날’로 합치되 ‘어머니 제삿날’에는 메모리데이로 생각하고 꽃과 기도를 올리는 시간을 갖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