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 정말 죽도록 더웠다. 그게 농담이 아닌 것이 실제로 전국에서 더위로 인한 노약자 사망이 속출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시 나는 병장 1호봉의 아주 편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수방사라는 부대가 서울에 있는지라 밤에는 열대야로 주체를 할 수가 없었다. 좁은 내무반에 16명이 다닥다닥 붙어 자려니 얼마나 뜨겁겠나. 가뜩이나 휴가 다녀온 지 오래 된 수컷들의 경우는 이상하게 뭔 냄새도 풍기고 새벽녘 천둥 번개도 치지 않는데 불끈 솟은 피뢰침 같은 것이 '강안남자' 조철봉처럼 옆에 있으면 아주 그냥 구타유발을 하게 된다.
1994년에 참 많은 닭들이 죽었다. 하긴 털이라고는 뭐, 한 네 군데 있는 인간도 더워 죽겠는데 닭털 코트를 입고 있는 애들은 얼마나 덥겠나. 노스페이스 입고 있는 오리는 말 할 것도 없고. 당시 쓸데없는 유언비어겠지만 죽은 닭이 군대로 온다는 설이 있었다. 우연의 일치로 그 더위에 닭백숙은 1인당 두 마리씩 나왔다. 암튼 자전거도 씹어 먹을 나이에 모두 맛나게 먹었고 그 후 근무 중 조는 놈들이 많아졌다. 개 보면 도망가고….
지금 대한민국은 찜통이다. 뜨거운 딤섬 통을 머리에 쓰고 있는 정도로 덥다. 경산은 40도를 넘기기도 했다. 그 정도면 자동차보다는 낙타를 타고 다녀야 맛이 날 것 같다. 이제 석유만 발견 되면 경산은 두바이 되는 거다. 대구는 이번에 더위 지역을 경산에 빼앗김으로 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암튼 혹시라도 노인들은 이 더위에 밭 일 나가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주변에서 신경 써야 할 때다.
얼마 전 어느 조사에서 어린 학생들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 최상위에 뽑혔다는 뉴스가 있었다. 부모들이 돈 때문에 고생 하는 것을 보니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것이리라. 일부 어른들은 조심스럽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일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단!! 아이들이 마냥 ‘대통령 될테야!’ ‘달나라 여행 할래요!’ 하듯이 꿈을 꿔서야 되겠는가.
요즘 같은 때 공공기관 체험을 하는 것도 좋겠다. 너희가 꿈꾸는 국가 공무원 여러분께서 과천 정부 청사에서 얼마나 땀 흘려 일하고 계신지 겪어 보는 거다. 또한 유리로 멋지게, 겁나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시청 청사에서 땀을 베이징덕 기름 짜듯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아~난 꼭 이 후끈한 열기의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말거야!’ 하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해 보는 거다.
공무원들은 전생에 뭔 죄를 그렇게 많이 지어서 겨울에는 한파와 싸우고 여름에는 더위와 싸워야 할까? ‘부서 복’ 도 있는 것 같다. 운이 좋아 국회 제 2의원 회관 같은 곳에 근무하게 되면 조명도 밝고 실내 온도도 다른 공공기관과는 상관없이 시원하게 설정이 되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암튼 힘 있는 사람들 많은 곳은 시원하다고 뉴스에 자주 때려서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몇 해 전에 울산지검에 초대를 받아 간적이 있었는데 정말 더위란 무엇인가의 정의를 맛볼 수 있는 날씨였다. 어찌어찌해서 지검장 방에 차 한 잔을 하게 되었다. 아, 지검장 방도 에어컨 따로 없다. 아, 근데 이 분이 자기 혼자 선풍기 고정으로 틀어 놓고 내게 이런저런 덕담을 하신다. 난 어쩌라고….정장을 입은 내가 스페인 축구 감독 겨드랑이처럼 젖어 끝내 “저 검사님 선풍이 회전으로 하시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그 후 이분이 검찰총장(현재 은퇴)이 되어서 TV에 자주 나오는데 내게는 ‘선풍기 욕심쟁이’로만 보였다.ㅎㅎ
전력난이 심각하다. 발전소는 이래저래 더 만들기 어려워지는 시대고 있는 전력을 아껴 쓰는 방법만이 대책으로 나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공무원들의 솔선수범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옥 같은 환경을 계속 겪는 것만이 방법인지는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갑작스런 전쟁을 염두에 두고 근무를 서는 것이 군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땀 차고 무지막지한 더위를 감수하는 전투복이 최선인지는 마음을 열고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도 더위와 싸우는 공무원들 힘내시고!!! 짜증은 나시겠지만 업무상 만나는 시민들에게 친절히 대해주셔요^^. 다음 생에는 꼭 북극곰이나 황제펭귄으로 태어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