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B: 리턴투베이스'(김동원 감독, 이하 알투비)가 15일 개봉 첫 날에만 20만명이 들었네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아니 지금처럼 '박터지는' 극장가에서 아주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개봉 직전까지는 이 영화에 대한 우려가 참 많았습니다. 1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갔는데 개봉 일정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연배우 정지훈이 군에 입대하기 직전인 작년 10월에 제작보고회를 치렀는데 그 이후로 무려 10개월여만의 개봉. 제작보고회 후 길어야 한 달 안에는 개봉을 하는 게 일반적인 스케줄인 터라 그 사이 'CG에 문제가 있다더라' '보충 촬영을 해야 한다더라' 등등 안좋은 얘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 투자·배급사인 CJ E&M 측은 루머 불식시키기에 나섰습니다. 담당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이례적으로 공군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어 군 수송기(C-130)를 타고 촬영 현장인 대구비행장을 탐방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연가시'의 흥행으로 겨우 숨통을 틔웠으나 앞서 기대했던 배급작들이 줄줄이 고전하는 바람에 CJ로선 '알투비'의 흥행성공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주 걱정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손익분기점 350만명은 여전히 쉽지 않은 숫자이지만 적어도 우려했던 만큼의 혹평은 아닐 것 같습니다.
개봉일이던 지난 15일 일반팬에 섞여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113분의 제법 긴 러닝타임을 즐긴 후 상영관 출구를 빠져나가는 관객들의 체감 평가를 귀동냥했습니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는 서로 웃으면서 "액션이 엄청나다. 재밌다"라고 하더군요. 40대쯤의 한 아빠는 아들에게 "이 정도면 볼만하네, 안 그러냐"라며 긍정적인 사인을 보내기도 했고요. 대체로 표정들이 밝았습니다.
관객들의 말 그대로입니다. 비주얼은 수준급입니다. 서울 상공에서의 전투기 추격전 등은 다이내믹하고 화려합니다. '인셉션' '다크 나이트' 등에 참여했던 미국 할리우드 항공촬영팀 '울프 에어'가 찍었다고 하네요. CG 티가 거의 안 나요.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베리 굿'입니다.
하지만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좀 야박한 듯 합니다. 비주얼이 워낙 근사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이는 현상 같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에어쇼 비행팀에서 금지된 기동을 했다가 징계를 당하고 전투비행단으로 전출된 정태훈(정지훈) 대위는 반항아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전출된 곳에서도 제멋대로의 행동을 하다가 원칙주의자 이철희(유준상) 소령과 대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엔 그가 한 눈에 반한 항공 정비사 유세영(신세경) 중사가 있습니다.
긴장감이 감도는 전투비행단 생활 속에서도 그는 유중사를 향한 구애작전을 펼쳐갑니다. 그러던 중 북한군의 전투기 도발로 전투비행단은 위기에 처합니다. 서울 상공에서의 교전 중에 박대서(김성수) 소령이 사망하고 지석현(이종석) 중위는 휴전선 이북 지역에 고립되면서 정태훈과 이철희가 힘을 합쳐 사상 최대의 구출작전에 들어갑니다. 거기엔 박소령을 사랑했던 오유진(이하나) 대위, 지석현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레스큐팀의 최민호(정석원) 중사 등도 있습니다.
결코 단순한 줄거리는 아닙니다. 조종사들의 일과 사랑에 북한의 도발, 우리 측의 대응, 미국의 개입 등 정치역학적 구도까지 섞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좀 꼬여 있어도 캐릭터의 행동이나 문제의 해결은 간단합니다. 그냥 무시하는 거죠.
엄청난 돈이 들어간 전투기 액션을 살리려다보니 등장인물간의 관계에 대해서 좀 소홀해졌습니다. 정지훈의 끝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엘리트 조종사 이하나가 아이가 하나 있는 '돌싱' 김성수를 왜 그토록 사랑하게 됐는지, 이종석을 구하기 위해 정석원을 비롯한 동료들이 왜 그렇게 목숨까지 무릅쓰는지, 북한 공군기지를 미사일로 초토화시켰는데도 그에 따른 영향과 변화는 없는지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미덕인 화려함과 재미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정지훈은 제멋대로이지만 천재적인 할리우드 히어로 캐릭터 그대로 입니다. 정지훈과 유준상이 라커룸에서 우람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어디서 많이 본 전형적 시퀀스 입니다. 컨트롤 타워에서 워 게임같은 전투기 기동을 지켜보며 한미 양국의 수뇌부들이 입씨름만 하는 장면도 익숙합니다. 긴급한 위기처럼 보이지만 관객들은 곧 해결될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초 이 영화의 출발점에는 '우리도 톰 크루즈의 '탑건'같은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하니 적어도 이같은 목표는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80~90년대 할리우드가 한창 다뤘던 전쟁영웅들의 사랑과 우정, 액션을 좋아한다면 강력추천합니다.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의 치밀함보다는 오락성이 중요하다면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