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화의 어머니 손미자(53)씨는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서문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한다. 이경화는 지적장애인의 스포츠축제인 세계스페셜올림픽에서 메달을 주렁주렁 걸고 왔다. 지난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스페셜올림픽 보체 종목에서 복식 금메달, 단식·단체 은메달을 따냈다.
보체는 땅 위에서 하는 컬링으로 불린다. 코트에 표적 공을 던진 후 4개의 공을 굴려 표적 공 가장 가까운 곳에 도달하는 공이 많은 선수가 이기는 게임이다. 이경화는 2009년에 보체를 시작하자마자 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땄다.
지난 17일 2012년 한국 스페셜올림픽 여름 대회가 열린 경북 경산시 실내체육관에서 이경화와 어머니 손씨를 만났다.
손씨는 "딸이 딴 메달이 10개가 넘는다. 너무 소중해서 예쁜 하트 모양 바구니에 모아놓고 매일 본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경화는 이번 대회에서도 보체 단식 금메달, 복식 은메달을 획득했다.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성과로 대회 홍보대사인 야구인 양준혁과 함께 성화봉송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경화는 "양준혁씨가 이번 경기 열심히 하라며 사인도 해줬다"며 기뻐했다.
손씨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온 딸이 '서문시장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는 "경화가 대회에 나간다고 하니까 동네 분들이 모두 잘하고 오라고 응원해줬다"며 "메달을 따면서 경화가 자신감이 생겼다. 밖에 나가면 인사도 잘하고 동네 청소도 앞장서는 등 시장의 귀염둥이다"고 자랑했다.
이경화는 초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지능이 5년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 손씨는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대로 멈췄다. 하지만 그래도 밝고 씩씩하게 자라줬다"고 말했다.
이경화는 성인이 된 후에야 뒤늦게 보체를 만났다. 대구 장애인종합복지관에 다니면서 우연히 알게 된 종목이라고 한다. 이경화는 평소 가족과 볼링장을 자주 찾을 정도로 볼링을 좋아했는데, 볼링처럼 공을 굴리면서 하는 보체에도 흥미를 느꼈다. 경기 방식과 규칙을 한 번에 알아듣고 잘 따라했다. 이경화에게 보체를 가르친 복지관의 홍상우 체육교사는 "경화가 눈치가 빨라서 경기 방식을 빨리 습득했다"고 평했다.
보체는 상대 선수와 몸을 부딪히는 운동이 아니라 체력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대신 집중력이 필요하다. 지적장애인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체가 집중력을 기르는데 좋다. 체육교사 홍씨는 "보체 선수에 여성이 많은 것도 남성보다 집중력이 좀 더 높기 때문"이라며 "경화는 다른 선수보다 순간 집중력이 특히 좋아 잘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경화는 보체에 푹 빠진 후 매일 복지관에서 2시간씩 연습했다. 체육교사 홍씨는 "친구들하고 직접 공을 굴리며 놀이처럼 하기 때문에 즐겁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경화도 "공 던지는 게 어렵지 않다. 하얀 공을 맞춘다는 생각으로 던지는데 참 재미있다"며 직접 코트에 서서 시범을 보였다. 개구쟁이처럼 환하게 웃던 이경화의 얼굴에는 순간 진지함이 감돌았다. 입을 앙 다물고 몸을 낮춘 채 한동안 하얀 공을 날카롭게 응시하더니 공을 능숙하게 굴렸다. 신기하게 굴린 공이 하얀 공 바로 옆에 섰다. 메달을 딸만한 실력이었다.
이경화의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어머니 손씨는 이날 가게문을 닫고 경산 실내체육관까지 딸을 응원하러 왔다. 이경화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 현우씨도 누나가 대회를 나가면 용돈을 주며 잘하고 오라고 힘을 실어준다.
사실 누구보다도 가장 큰 지원군은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4년 동안 간암 투병을 하다 지난 5월 눈을 감았다. 이경화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자 눈물을 글썽였다. "아빠가 금메달을 따오면 무척 좋아했다. 앞으로도 아빠가 좋아했던 금메달 많이 따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손씨는 "보체가 경화의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어줬다. 보체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선생님들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는 경화와 함께 자원봉사하며 받은 사랑을 더 많이 돌려주고 싶다"며 딸을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