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아나운서들의 프리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KBS에서는 전현무에 이어 김경란 아나운서까지 사의를 표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프리랜서 MC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성주·박지윤 등도 지상파 아나운서로 근무하다가 독립한 케이스. 이들이 대학생들의 선망직종 1순위로 꼽히다시피하는 지상파 아나운서직을 버리게 된 이유를 살펴봤다.
▶더 좋은 환경과 보수 유혹
지상파 인기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하는 주된 이유는 역시 '더 나은 환경과 보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상파 3사 아나운서들이 받는 프로그램 출연료는 회당 2만원선에 그친다. 물론, 방송사 직원으로 만만찮은 연봉을 받고 있는건 사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동반출연하는 연예인들의 1회 출연료 단가가 워낙 높아 아나운서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얼굴이 알려진 공인이라 외부에서 크고 작은 행사의 사회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KBS 등 공영방송의 경우 자사 아나운서들이 금전적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행사 등 외부활동을 못하도록 막고 있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지상파 소속 아나운서들은 여러 편의 고정 프로그램을 맡으면서도 당직 등 회사의 기본 업무까지 소화해야만 한다. 연예인들이 소속사의 지원을 받으면서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것에 비해 체력적으로 힘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전현무 아나운서도 지난해 4월 '남자의 자격'에 투입될 당시 이미 '생생 정보통' 등 여러 프로램의 고정 MC를 맡고 있었다. 수시로 기획되는 파일럿 프로그램과 시상식 등 행사까지 도맡고 있는 상황에 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리얼 버라이어티까지 출연하게 돼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인기 아나운서의 경우 다양한 루트를 통해 '함께 일해보자'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인지도와 실력만 갖췄다면 외부 행사 하나만 소화해도 지상파의 월급 정도의 액수를 보수로 받을 수 있는게 현실"이라면서 "앞서 프리선언을 한 김병찬 아나운서가 예전만큼 방송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건 아니지만 오히려 수입은 더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아나운서에 대한 선입견 무너지고 활동폭 넓어져
아나운서들의 활동폭이 넓어진 것 역시 프리선언을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상파 아나운서들에 대해서는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선입견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90년대에 들어와서부터다. 지금은 연기자로 활동중인 임성민 등 소위 끼있는 아나운서들이 특집 프로그램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나운서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김성주처럼 뉴스와 예능 전반을 오가면서 실력을 발휘하는 아나운서가 나오고, 처음부터 '예능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전현무가 등장하면서 아나운서들에 대한 업계 및 대중의 시각도 달라졌다. '점잖고 품위있어야 한다'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깨지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도 가능해진 것. 임성민과 최송현·최은경 등 아나운서 출신의 연기자와 김현욱 등 아나운서의 경험을 살려 사업체를 꾸린 이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선교 등의 예처럼 방송인이 아니면 정치인 또는 교수 등 한정된 분야로만 진출하던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 지상파 아나운서국의 간부는 "결국은 성향의 문제다. 조직에 몸 담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도전정신을 가지고 또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은 과거에 비해 아나운서들이 여러가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인기 있어야 프리선언도 가능
프리랜서의 장점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프리선언을 할 수는 없다. 결국 프리선언도 실력과 지명도를 두루 갖춘 인기 아나운서만의 특권이다. 지상파에 소속돼 있는 동안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인 아나운서만이 성공적인 프리랜서 활동을 할 수 있다. 타사에 비해 KBS에서 유독 프리선언을 하는 아나운서들이 많이 나오는 것 역시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KBS측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7년간 KBS에서 프리선언을 한 아나운서는 총 18명이다. 반면에 SBS는 1991년 아나운서국이 생긴 이래 프리선언을 한 아나운서가 유정현·김범수·김성경·윤영미 등 6~7여명에 불과하다. MBC도 KBS에 비하면 프리선언을 한 아나운서의 수가 많지는 않다. 이 말은 결국 KBS에서 인기 아나운서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KBS는 타 방송사에 비해 자사 아나운서들의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뉴스 뿐 아니라 예능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 투입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이면에는 '비싼 연예인을 쓰기보다 자사 직원을 쓰자'는 의미가 있겠지만 한편으로 아나운서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