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을 필드에 "야, 세리가 우승했다"라는 말이 다시 울려퍼졌다. 대회장에 모여든 갤러리들은 은막(銀幕)을 떠난 여배우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박세리(35·KDB금융그룹)는 환호하는 갤러리를 향해 박수로 화답하며 활짝 웃었다. 한때 국내 여자프로골프 무대를 쥐락펴락했던 지배자의 귀환은 옛 모습 그대로 강렬했고 통쾌했다.
◇여왕의 귀환
23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GA) 투어 2012 KDB대우증권 클래식 최종 3라운드. 박세리가 9년 만에 국내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타차 단독선두로 출발한 박세리는 대회 마지막날 버디 9개, 보기 2개로 7타를 줄여 합계 16언더파 200타를 적어내 허윤경(22·현대스위스·13언더파)을 3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9번홀 60cm 버디를 시작으로 12번홀까지 4홀 연속 버디는 박세리 전성기 그대로였다. 우승상금 1억2000만원.
박세리가 하얀 맨발을 드러내며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1998년은 '응답하라 1997'이라는 인기 TV 드라마의 배경이 됐던 시기다. HOT, 젝스키스등 그 시절 스타들은 모두 사라졌다. 골프에서도 박세리가 아니라 박세리 키드들의 세상이 됐지만, 박세리는 멋지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세리의 이날 성적은 김하늘(24·비씨카드) 등 3명이 보유한 KLPGA투어 54홀 코스레코드인 12언더파 204타를 4타 나 경신한 신기록이다. 박세리는 이번 우승으로 KLPGA 투어 통산 승수를 14승(아마추어 우승 6승 포함)으로 늘렸다. 박세리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03년 5월 MBC X-CANVAS 오픈 이후 9년4개월만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까지 포함하면 25번째로 우승한 2010년 5월 벨마이크로 LPGA 클래식 이후 2년4개월만이다.
박세리는 "오랜만에 고국 팬들 앞에서 다시 우승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내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눈물을 흘려도 될법한 감동적인 상황이었지만 박세리는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소감을 밝혔다.
◇영광과 좌절의 세월을 이겨내다
여고시절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국내 무대를 평정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1998년에는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시즌 4승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한국 최고의 수출품이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인왕은 물론이고 2007년에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2004년 5월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 이후 찾아온 끝모를 슬럼프는 박세리의 모든 명예를 한 순간에 추락시켰다. '세리 키즈'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지만 '세리 신드롬'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특히 2005년 5월 숍라이트클래식에서 85타를 치자, 국내 팬들은 그를 "주말골퍼"라고 놀렸다. 결국 그해 9월 LPGA 투어 사무국에 '병가'를 내고 시즌을 접는 등 '골프여왕'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 국내 무대 최고의 흥행카드였던 박세리는 그렇게 잊혀져 갔고 그를 찾지 않았다. 성적이 나지 않자 그를 후원하는 기업들도 등을 돌렸다. 한국 최고의 선수는 수년 동안 '무적선수(스폰서가 없는 선수)'로 빈 모자를 쓰고 대회에 출전하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박세리는 이 대회에 앞서 한 달 전에 한국에 왔다. 몸과 마음의 부상 때문이기도 했고 스승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국내 1호 '골프 대디'나 다름없는 아버지 박준철씨는 그의 영원한 스승이고 멘토다. 박세리는 "지난 겨울 동계훈련 때도 아버지와 함께 했고, 이번에도 대전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예전의 스윙 감각을 되찾고 있다"며 우승의 공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그는 이렇게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