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MBC '골든타임'의 또 다른 제목은 '이성민 타임'이었다. 그 만큼 배우 이성민(44)의 존재감이 컸던 드라마였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알고보면 정 많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최인혁 의사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스르륵 빠져버렸고 동시에 이성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갑자기 주목받는 게 신기해요. 팬클럽이 생긴 것도 놀랍고요."
극 중에서 툭툭 내뱉는 경북 사투리도 그의 매력을 더하는 데 한 몫했다.
"사투리를 쓰면 어떻겠냐고 권석장 감독님께 제안한 건 저였어요. 억지로 부산 사투리를 쓰고 싶지는 않았고 어미만 경북 사투리로 표현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캐릭터를 살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거죠."
"아직도 대중의 관심이 쑥스럽고 어색하다"는 그는 '골든타임' 이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마음가짐은 드라마 찍기 전과 다르지 않다.
"어떤 분이 '이번에 주연했는데 이제 조연 안할건가요?'라고 묻더군요. 제 대답은 뻔해요. '당연히 안 가리고 한다'입니다."
-'골든타임'을 끝낸 소감은.
"후련하다. 정말 속 시원하다. 사실 마지막 촬영하는 날 기분이 어떨까에 대해 늘 생각했었다. 신날 줄 알았는데 마냥 신나지는 않더라. 4개월간 징글징글하게 봤던 사람들을 못 본다는 게 서운하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운 마음도 크다."
-인기 실감하나.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덤덤한 편이라 신경을 쓰진 않는다. 그런데 확실히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건 알겠다. 팬클럽이 있고 촬영장에 팬들이 찾아오는 건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내게 팬클럽이 생기니깐 당황스럽다. 다들 나한테 왜 이러나 싶다. 사인을 해준다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일도 불편하지만 유명해진만큼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있다. 그냥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첫 주연을 맡았다.
"주연을 하니깐 확실히 책임감이 많이 따르더라. 극 초반 시청률이 잘 안나왔는데 그게 엄청 신경쓰이고 부담스러웠다. 내 의지로 어떻게 달라지는 게 아니니깐 답답하기도 했다. 또 (이)선균도 있는데 최인혁 캐릭터에 너무 관심이 쏠리니깐 '내가 이렇게 중심에 서면 안되는데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담스러웠다."
-이선균의 경우 관심을 나눠가져서 속상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겠다. 잘 모르겠다. 뿌듯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하. 이 캐릭터를 강력하게 추천하면서 나를 설득시킨 게 바로 선균이다. 선균이가 '최인혁 캐릭터를 하고 나면 앞으로 바빠져서 얼굴 보기도 힘들거다'며 꼭 하라고 했다. 선균이 덕분에 좋은 캐릭터를 만나서 고맙다."
-부산 올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힘든 점은 없었나.
"4개월 동안 서울을 딱 두 번 올라왔다. 한 번은 제작발표회 날이었고 또 한번은 그냥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이 몇 번 있었는데 집중력이 떨어질까봐 일부러 안 올라갔다. 대본이 촉박하게 나와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1년 동안 3일 쉬는 최인혁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피곤해보이려고 잠을 안 잔 적도 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웃음)"
-사투리 연기가 ‘대박’이었다.
"시놉시스와 1·2부 대본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사투리를 쓰는 설정이 아니었다. 뭔가 투박하게 최인혁을 표현하고 싶어서 감독님께 '사투리를 쓰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감독님이 '리딩 때 사투리를 해보자'고 해서 했는데 처음에는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런데 선균이도 그렇고 감독님도 잠시 고민을 하더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하지만 일부러 단어는 사투리를 안 썼다.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향 말투를 쓰다보니깐 연기도 자연스럽게 잘 된 것 같다."
-'골든타임' 이후 가족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차림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하.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 고맙다. 이번 추석 때 친척들이 모여서 드라마에 나온 것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좀 어색하고 민망했다. 딸은 열 두살인데 드라마를 보더니 갑자기 의사가 되겠다고 하더라."
-시즌제를 한다면 또 출연할 의사가 있나.
"상상도 하기 싫다. 아직 모르겠다. 빨리 '골든타임'을 털어내고 싶다. 촬영하면서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웃음)"
-극 중에서 이선균에게 '의사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을 주어만 바꿔서 묻겠다. 배우는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
"어떤 대본을 받고 내가 뭘 해야할지 모를 때다. 실제로도 그런 경험이 있다. 무대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 적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아무리 친한 친구가 술을 한 잔 마시자고 해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모든 캐릭터를 다 할 수 있는 배우는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제대로된 멜로를 해보고 싶다. 하하. 이번에 송선미씨랑 연기를 해보니깐 호흡이 잘 맞더라. 멜로 상대역으로 송선미씨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목표는.
"사실 20년 넘게 연극과 연기를 하면서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가지고 만족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게 이뤄진 것 같다. 앞으로 이게 유지가 됐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