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경(33·넥센)은 왔다갔다 했다. 머릿 속이 복잡했다. '아, 이제 저기 가서 유니폼을 입으면 코치가 되는 건가. 선수 때는 잘 해나갔지만 코치가 되면 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18일 서울 목동구장에선 염경엽 넥센 신임 감독 취임식이 열렸다. 2013년도 1군 코칭스태프 발표도 겸한 자리였다. 염 감독이 회견을 할 때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김수경은 내년 1군 코치 중 한 명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있었다.
염 감독으로부터 "김수경 불펜코치"라고 소개받은 김 코치는 "은퇴라는 단어와 코치라는 단어가 아직은 어색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선수 때의 열정을 담아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올 시즌 넥센 투수로 뛰었다. 아직 한국야구위원회(KBO)에는 현역 선수로 등록돼 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가 서 있던 곳은 마운드였다.
그는 은퇴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공은 현실이다"고 했다. 그는 "1군에서 뛰어보긴 했지만 타자 상대하기가 쉽지 않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전력으로 던져도 134㎞가 고작이었다. 1이닝 던지면 안타 2,3개씩 맞으니 자신이 없었다"면서 "혹시 도전해 좋아질 수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희박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의 부인은 은퇴 결심에 "예전에 유니폼 입은 게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그는 올 시즌 9경기에 나와 1패 평균자책점 2.13을 기록했다. 피안타율이 0.373로 많이 맞았다. 8월 1일 SK전을 마지막으로 1군 무대에선 더 이상 그의 투구를 볼 수 없었다. 그는 현역 선수 중 최다인 통산 112승을 거뒀다. 그러나 올해는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는 "2군에 내려가서도 정말 열심히 했다. 왠지 공 놓기가 싫었다. 마지막날까지 캐치볼을 했다"면서 "코치 제의를 받고 3,4일 정도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결정하고 나서도 '이 길이 맞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지금도 꿈같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현대 시절부터 그를 지도한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의 조언이 힘이 됐다. 그는 "감독께 전화를 드리니 '코치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해주셨다. 나보다는 주위 분들의 눈이 정확한 것 같다"고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를 밝혔다.
투수는 전성기가 꺾이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좌절하는 선수가 있고, 재기하는 선수가 있다. 김수경보다 두 살 어린 배영수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4,5년 고생하다 올 시즌 12승을 거둬 부활에 성공했다.
김수경은 "나도 영수처럼 과거 영광을 누리고 싶어 포기 안 하고 했다. 그때를 잊지 못하겠더라. 하지만 부진이 길어지니 지치고 벽에 부딪혔다. 배영수처럼 하지 못한 게 아쉽다. 팬들께도 죄송하다"고 했다. 플레잉 코치를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일단 배팅볼 던지고 확인해볼 생각"이라며 미련을 슬쩍 드러내기도 했다. 김수경은 NC를 포함한 9개 구단 코치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넥센 투수 중 이정훈과 김병현은 김수경보다 선배다.
그가 이날 조태룡 단장으로부터 전해받은 유니폼엔 정들었던 30번 대신 지도자 번호인 83번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아마 신인이 30번을 달 것 같다.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처럼 빨리 가기보다 오래 길게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 후 3년 동안 40승을 거뒀다.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우승 등 영예를 한몸에 안았다. 하지만 이후 12시즌 동안 72승, 그 중 마지막 5년은 10승에 그쳤다. 새로운 30번 선수가 롱런하길 바라는 마음은 경험에서 우러난 그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