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삼성리움미술관 옆 건물로, 현대적 미술관의 연상 선상인 공간. 명주·삼베·모시를 벽지로 바른 벽엔 저고리 옷고름이 그대로 붙어있다. 메뉴판 커버는 한국 전통 오방색을 구현한 모시 재질이다.
동서양을 하나로 융합한 이 예사롭지 않는 컨셉트는 조태권(64) '광주요' 회장의 작품이다. 전통주 '화요', 식기 '광주요', 한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고급 메뉴 등을 꾸준히 개발해온 조 회장이 지난달 한식당 '비채나'를 오픈하며 4년만에 한식 세계화·고급화에 본격적 시동을 걸었다. 지난 2008년 건물 임대 문제로 한식당 '가온'을 접었던 그는 한식으로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겠다는 꿈을 실천해가는 야심가이다.
- 비채나는 가온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나.
"그렇다. 그 동안 가온같은 식당을 새로 만드는 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내 뜻만 가지고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비웠다. 가온에서 음식을 맛보고 한식의 세계화에 뜻을 같이 한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이 '여기서 해보는(한식당을 다시 차려보는) 게 어떠냐'며 기회를 주었다. 미국·일본·이탈리아 등에서 음식을 공부한 둘째 딸(조희경 광주요 기획이사)이 비채나 운영을 맡았다. 나는 비우고, 딸이 채우고, 다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이름을 '비채나'라고 지었다. 메뉴는 한달 반마다 한 번씩 바꾼다. 한식의 다채로움을 맛보도록 하면 질리지도 않을 것이다. 새 메뉴는 계속 개발된다."
- 한식의 세계화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지구는 한지붕이다. 세계의 모든 식자재를 한식에 접목할 수 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인간은 좋고 싫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맛있으면 수용하게 된다. 음식이 가장 빠르게 세계화될 수 있다. 거기에 품격을 더하면 된다. 어떤 제품도 하나만 만들면 안된다. 계속 진화해야 한다. 음식점은 문화생산 공장이다."
- 광주요의 주력이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음식이 있어야 도지기가 있고, 술이 팔린다. 도자기만 갖고는 안된다. 모든 것이 총체이며, 각 부분은 가치사슬로 연결돼 있다. 음식 없이 도자기나 술이 확산될 수 없다. 고급스런 도자기에 담긴 음식을 경험한 사람이 도자기를 구입한다. '도자기만 잘 만들면 된다'는 식의 고정관념 때문에 우리나라 내수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음식·도자기·술 등이 세트로 팔리는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
- '돈키호테 같다'는 말을 듣지 않는가.
"외국을 수없이 다니며 눈으로 확인했다. 상위의 문화는 모두 동경하고 모방한다. '오늘의 사치가 내일은 보편화된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 양주도 개발 중인가.
"양주도 별 것 아니다. 서양인이 즐기는 스카치나 꼬냑 등은 각 지역의 증류주를 오크통(참나무통)에 숙성시킨 것에 불과하다. 증류한 백주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면 황금빛으로 변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리 쌀을 증류한 화요를 미국산 오크통에 넣어보았다. 쌀만의 향이 나는 고급 양주를 얻었다. '화요 엑스트라 프리미엄'이란 이름으로 다음달 출시 예정이다. 수요가 커지면 한국산 오크통 개발도 가능하다. 가치차등이 곧 고용창출로 이어지게 된다. 100% 우리 자원으로 만드는 거니까."
- 음식을 먹어야 하는 자리가 많을 것 같다. 건강 유지 비법은.
"평소 소식한다. 한 달에 서너번 정도만 많이 먹는다. 음식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어떤 맛인지 알기에 먹을 필요가 없다. 점심을 제대로 먹으면 저녁엔 샐러드만 먹는 식이다. 퇴근할 때는 운동화와 점퍼로 갈아입고 차에서 내려 집까지 3㎞를 걸어간다. 미팅이 많더라도 한끼 식사를 절대 2번 이상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