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동안 한 우물만 파던 사람이 다른 우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 번의 도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
조성모의 '불멸의 사랑' 아이비 '바본가봐' 등을 만든 작곡가 양정승이 최근 빨간추리닝이라는 듀오를 결성하고 동명의 타이틀곡 '빨간추리닝'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의 곁에는 캔·M4 등으로 활약한 20년차 베테랑 가수 배기성이 섰다.
이번 활동은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양정승은 작곡가로서 얻은 명성을 걸어야 했고, 배기성은 20년차 가수의 자존심을 걸었다. 이들이 빨간추리닝을 입고 무대에 오른 이유를 들었다.
-팀 이름이 왜 빨간추리닝인가.
"보통 빨간색 트레이닝복은 용기가 없으면 입기 힘들다. 정신에 문제가 있든가 용기가 대단하든가 둘 중하나다. 우린 이 느낌을 자신감으로 봤다. 창조적인 느낌도 마음에 들었다. 발라드 보다는 펑키 등 비트가 있는 음악을 할 계획이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아이돌처럼 알파벳으로 팀명을 만들기도 뭣하지 않나."(양정승)
-정규 그룹인가.
"사실 프로젝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이라는게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하고 싶어도 대중의 반응이 있어야 가능하다. 빨간추리닝의 음악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것 같다. 우리가 하는 펑키 음악이 '대세 장르'는 아니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가사가 듣기 편하다. ‘전 세계 여자는 다 내꺼’라는 내용인데 장동건·이정재가 이런 소리하면 재수 없겠지만 우리가 그러면 웃고 말더라."(배기성)
-가사 중 '난나나나, 난나나나나' 부분이 재미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것을 따왔다. 향수도 느껴지고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나. 뭔가 포인트를 주고 싶었는데 개다리 춤을 추면서 불러보니 어울리더라. 우리 노래가 리듬이 어려워서 정상적인 댄스는 어울리지 않고 어려운 춤은 우리가 못 따라간다. 가사와 개다리춤이 잘 맞았다."(배기성)
-랩이 굉장히 독특하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랩을 시도했다. 근데 형이 마스터링까지 끝난 상황에서 스톱을 걸었다. 느끼한 우리 스타일로 다시 해보자고 했다. 형이 직접 랩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양정승)
"녹음을 하면서 노래가 아니라, 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보긴 처음이다."(배기성)
-뮤직비디오도 화제다.
"빨간추리닝을 입으면 슈퍼맨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다. 감독님이 컴퓨터 그래픽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라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친구들도 많이 도와줬다. 래퍼 빅죠는 마술사로 나오고 허영생은 슈퍼맨, 김정민은 반전 캐릭터다. 최재훈 M4 멤버라는 이유로 망가져줬다."(배기성)
-두 사람은 어떤 인연인가.
"캔 데뷔 전부터 친한 사이었다. 미사리에서 노래를 할 때부터 같이 '놀았던' 동생인데 정승이가 작곡가로 뜨더니 연락이 없더라. 한 동안 못 봤다. 그러다가 정승이도 힘들어지면서 연락이 오기 시작하더라. 하하"(배기성)
"둘 다 인기가 떨어졌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살기도 했다. 90년대에 가수 활동도 했었는데 금방 해체하고 활동도 없었다. 그렇게 가수 꿈이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형이 흔쾌히 내 손을 잡아줬다."(양정승)
-서로의 장단점을 꼽아 보자면.
"정승이는 역시 프로듀서라 촉이 뛰어나다. 될 노래와 안 될 노래를 골라내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최고의 작곡가로 20년을 활동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다. 하하. 가수로서의 경험은 부족하지만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을 했던 사람이라 금방 적응할 것으로 본다."(배기성)
"형이 말은 가볍게 해도, 속이 단단하고 책임감이 무거운 사람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놓지 않는 의리파다. 대중은 잘 모르지만 노래를 정말 잘한다. 단점은 좀 예민하다는 점이다. 굉장히 섬세해서 이것저것 너무 신경을 쓴다."(양정승)
-양정승은 머리까지 노랗게 염색했다. 파격 변신이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노래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사실 어려서도 노래가 하고 싶어서 작곡을 배운 것이다. 언젠가는 무대에 서고 싶었고 형이 그 기회를 줬다고 생각한다. 형이 이왕할거면 작곡가랍시고 분위기 잡고 할 거면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망가졌다."(양정승)
-이렇게 밖으로만 '돌면' 캔 이종원이 섭섭해하지 않나.
"글쎄. 나라도 계속 활동해 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섭섭한 마음이야 있겠지만 많이 응원해줘서 고맙다. 농담이지만 형이 이젠 나이가 있어서 춤도 잘 안 추려고 한다. 난 아직 이런 음악이 하고 싶다. 캔은 10년이 넘은 팀이고 앞으로도 길게 갈 팀이라서 걱정없다."(배기성)
-'짝'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정말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 것 같다. 한 집에서 일주일을 보내니 그런 로맨틱한 감정이 안 생길 수 없더라. 정도 들었고 정말 결혼도 할 수 있겠다는 감정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방송을 하면서 가장 진실했다. 내가 선택했던 여성과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만족한다. 후회는 없다."(배기성)
-‘짝’ 이후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를 기대한 팬들이 많았다.
"발라드를 했다면 좀 뻔하다는 지적을 들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짝'에서 부른 자작곡을 발표하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방송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프로그램에서 내가 보였던 진실성이 사라지는 거다."(배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