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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143.허리케인 샌디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북부를 강타했다. 뉴저지 주에서는 주민 2명이 숨지고 건물의 외벽이 뜯겨나갔다. 폭풍과 만조가 겹치면서 뉴욕 맨해튼은 대형홍수로 대형 침수사태가 발생했고, 뉴욕증시거래소는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이번 태풍 샌디로 미국의 경제피해는 18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20조에 달한다고 한다.
보름 전만해도 미국에 있던 나는 일정을 앞당겨 귀국을 서둘렀다. 오랜만에 미국에 온 나를 많은 분들이 붙잡았다. “왜 서둘러 가십니까? 귀국 비행기는 며칠 후인데요.” 나는 웃으며 “홍수가 닥칠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뉴저지 교포들은 “법사님, 뉴저지는 단 한 번도 홍수피해를 입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허드슨 강이 범람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크게 웃었다.
1990년대 초에도 비슷한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교포들은 미국에서 홍수는 거의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만큼 미국의 관재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당시 한국은 비만 오면 거의 홍수로 이어지곤 했다. 1980년~90년대 초에는 여름만 되면 수해방송을 24시간 보는 게 일이었다. 수도인 서울조차도 홍수가 발생하면 수재민들이 넘쳐났던 시절이라 수해가 없다는 미국이 부럽기도 했다.
홍수가 없는 나라, 미국.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국의 신화는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2002년 9.11테러를 시작으로 2005년 뉴올리언스가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수몰되고 말았다. 그 사이 2004년에는 미국을 상징했던 거대한 큰 바위 얼굴의 암석이 부서져 나가고 말았다.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의 심장부를 강타하고 말았다. 방심했던 미국은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피해 대상은 맨해튼 일부와 뉴저지, 허드슨 강변이었다. 전기는 아직 완전히 복구가 안됐고 휘발유는 3-4시간을 기다려 배급제로 받고 있다. 지하철은 끊기고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역사를 뒤덮었다. 세계 일류도시 뉴욕의 시민들은 눈앞에 펼쳐진 아수라장에 당황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한국행 비행기를 탄 나는 창문 아래 펼쳐진 미국의 야경에 마음이 아팠다. 곧 닥칠 허리케인 때문이 아니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명운(命運)이 다해가는 세계 최강대국의 위용이 안쓰러웠다. 샌디가 지나간 뒤 뉴저지 후암가족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처럼 무서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후암가족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홍수를 조심하라, 비상식량을 준비해라, 휘발유를 가득 채워두라고 했던 나의 당부를 잊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허리케인 샌디는 미국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국 대선도 40여일 밖에 남지 않았다. 샌디가 미국 대선을 강타했듯이 한국 대선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 변수가 작용하리란 느낌이다. 변수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자연재해가 될지, 인재가 될지, 나라의 재난이 될지. 다만 사력을 다해 최대한 그 피해를 막아보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곧 선조들이 묻혀있는 정읍에 갈 예정이다. 정읍(井邑)은 부친 차일혁 경무관께서 목숨을 걸고 지켜낸 칠보발전소가 있다. 또 1947년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에 단독 정부를 세운다고 선포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전국에 우물 정(井)자가 들어간 시(市)도 정읍시 뿐이다.
얼마 전 정읍시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내장사 대웅전이 전소한 것이다. 내장사의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친의 진중기록을 보면 1951년 4월, 작전수행 중 내장사가 전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내장사 대웅전은 보천교 교주인 차천자의 집 행랑채로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로 우리 가족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미국 대선 직전 허리케인 샌디가 왔듯, 한국 대선 직전 발생한 내장사 대웅전 전소는 느낌이 좋지 않다. 일곱 번째 백일기도를 올리는 지금, 후암가족들과 함께 할 정읍 기도여행에선 또 어떤 미래를 만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