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하고 나서 처음으로 효도한 것 같아요."
올 시즌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는 박병호(26·넥센)다. 전경기(133경기)에 나서며 타율 0.290·31홈런·105타점·20도루로 맹활약했다. '도루하는 4번타자'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도 가입했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가장 빛나는 시즌을 보내며 '만년 유망주' 꼬리표도 떼어 냈다.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주목받았던 아들이 프로에 와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 부모의 마음도 활짝 펴졌다. 박병호는 "MVP를 받은 것뿐 아니라 올 시즌에 부상 없이 전 경기에 출장한 걸 보고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아들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4번타자가 됐다. 그는 "프로에 와서 처음으로 효도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MVP를 받은 박병호는 부모를 위해 또 하나의 효도를 준비했다. 상금으로 주행거리가 30만㎞를 넘는 아버지의 오래된 승용차를 바꿔드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약속은 아직 지키지 못했다. 박병호는 "며칠 전 상금이 입금됐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금을 좀 많이 떼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박병호는 정규시즌 MVP 상금 2000만원과 타격 3관왕(홈런·타점·장타율) 상금 각 300만원을 합쳐 29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박병호의 통장에 실제 입금된 금액은 22%의 세금을 제한 금액(약 2200만원)이었다. 여기에 MVP를 받은 기념으로 주변에 선물까지 돌리고 나니 통장에 남은 금액은 더 줄었다.
박병호는 작년 정규시즌 MVP였던 윤석민(KIA)이 고급 세단을 받은 만큼 이번에도 부상으로 승용차를 기대했다. 하지만 올해는 승용차 대신 상금이 쥐어졌다. 박병호는 "아버지가 남은 금액을 보시더니 '돈을 더 보태야할 것 같다. 안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 괜찮다'고 하시더라. 결국 차는 계약을 못했다"고 말했다. 차는 바꿔드리지 못했지만 MVP 상금은 여전히 아버지를 위해 쓸 생각이다. 그는 "아버지께 드리겠다고 약속한 거니까 남은 상금은 모두 아버지를 드릴 생각이다"며 효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12월에도 각종 프로야구 시상식이 열린다. 타격 3관왕에 오른 그는 각 시상식의 유력한 수상 후보다. 또 상금을 받을 수 있다. 박병호는 "내년에 집 전세가 만기가 된다. 이사하려면 돈을 좀 모아야 할 것 같다. 그동안은 많이 못 벌지 않았나"라며 웃었다. 아내를 위한 이벤트는 따로 없다고 했다. 박병호는 "아내와도 이야기를 해봤는데 다른 걸 사는 것보다 일단 돈을 모으자고 하더라. 전세가격도 요즘은 너무 비싸다"며 "하지만 또 상금을 받는다 해도 세금을 떼일 거고 그러면 또…"라고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각종 시상식 일정과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보낸 겨울과는 많이 다르다. 모든 게 감사하다"면서도 "내년 시즌에 운동량이 부족해 준비가 안됐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작년 겨울과 똑같이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희 기자 ju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