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만 해도 프로축구 경남 FC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K-리그 시·도민구단 중 유일하게 스플릿시스템에서 그룹A에 포함됐고, FA컵 우승에 도전장을 던진 상태였다. 광주와의 30라운드 경기에서 2-1로 이겨 그룹A 진출을 확정지은 뒤 선수단은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노는 물이 다르다'고 쓰인 플래카드 앞에서 감독과 선수 할 것 없이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하지만 경남의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춥고 쓸쓸할 전망이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겹쳐지며 팀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았다. 무엇보다도 절치부심하며 도전했던 FA컵 우승에 실패한 것이 직격탄이 됐다. 사력을 다 했지만 결승에서 강호 포항 스틸러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사실상 유일한 도전 과제가 사라지면서 남은 시즌 기간 중 경남 선수단의 목표의식도 함께 사라졌다. 내년 시즌에 유용하게 활용할 신인과 젊은 선수들을 발굴할 기회를 얻은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심각한 재정난도 선수들의 마음을 꽁꽁 얼게 만들었다.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는 STX그룹이 세계 경제불황의 여파로 스폰서십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구단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구단측이 백방으로 뛰며 노력한 결과 선수단 월급은 문제 없이 지급할 수 있었지만, 구단 직원들은 월급 체불의 찬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계획이나 비전을 이야기하고자 해도 이를 결정할 주체가 없다. 김두관 전 구단주 겸 경남도지사가 대선 출마 준비를 위해 7월에 도지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행정 공백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수를 사거나 팔려 해도, 심지어 기존 선수들의 재계약 여부를 논의하려해도 최종결정권자가 없다보니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없다. 계약 만료를 눈 앞에 둔 사령탑 최진한 감독의 재계약 여부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열리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이후에나 구단 행정이 정상화 될 전망이지만, 새 구단주의 성향에 따라 팀 운영 방침이 크게 바뀔 수도 있어 구단 관계자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남의 한 선수는 26일 일간스포츠와의 전화통화에서 "요즘 우리 팀은 일반적인 축구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다"면서 "그룹A 잔류가 확정됐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구단 내부적인 문제들도 여럿 있어서 마음이 무겁다"면서 "가끔은 피말리는 강등권 탈출 싸움을 하며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는 그룹B 소속팀들이 부럽기도 하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