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조성희(33)감독이 '늑대소년'처럼 말랑말랑한 영화를 내놓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2009년 제8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대회 개최 사상 두번째 대상작으로 꼽혔던 '남매의 집'이나 박해일과 작업했던 장편 '짐승의 끝' 등 전작들이 하나같이 탄탄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스릴러나 호러에서 두각을 보일거라고 넘겨짚었기에 '늑대소년'도 스릴과 스펙타클이 강조된 영화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조성희 감독은 여성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폭넓은 연령대에 두루 어필하는 대중영화를 내놓으며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늑대소년'은 개봉 5주차까지 누적관객수 650만명을 넘기며 열풍을 몰고왔다. 조성희 감독은 충무로에서 '영리한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흥행성공으로 들뜬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것 같다.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벌써 다음 작품이 슬슬 걱정된다. 지금 차기작 시나리오를 써보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류의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멜로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스타일이 변했다. 전작 '남매의 집'이나 '짐승의 끝'을 봤던 관객들은 '늑대소년'을 보고 많이 놀랐을거다.
"워낙 여러 장르를 좋아한다. 취향이 변했다기보다는 이런 사랑이야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전작들을 집에 틀어놓고 상영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가족들이 모두 힘들어하더라. 어머니는 중간에 주무셨고, 아버지는 '이런 것도 영화냐, 앞으로는 이런 영화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사실 대다수 중년층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폭 넓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전 가족이 함께 모여 볼 수 있는 가볍고 재미있는 영화를 지향하고 만들었다."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늑대소년'을 만들었다는 말로 들린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언젠가 '아바타'를 보고 극장을 나서다가 중학생 정도 되는 딸과 아버지가 그 작품을 두고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연출한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다싶었다. 이번에 VIP 시사회때는 아버지·어머니는 물론이고 고모·이모·삼촌까지 다 오셔서 재미있게 보고 갔다. 개인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했다."
-스토리를 단순하게 만든 이유를 알 것 같다.
"맞다. 15분 정도만 보고 있으면 누구나 다음에 일어날 전개를 눈치챌 수 있을거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기위해 어쩔수가 없었다. 결국 그런 의도가 잘 맞아떨어져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여자분들로부터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거다."
-캐스팅이 돋보인다.
"우리 영화 출연자들을 두고 다들 '이런 배우 없다'는 말을 한다. 자기 주장이 지나치게 세거나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배우들도 많지 않나. 하지만, 우리 배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태프들과 잘 어울리고 감독을 믿어줬다. 영화인들이 '착한 배우 만나 제대로 복 받았다'고 하더라."
-특히 송중기는 극중 철수와의 싱크로율이 100% 맞아떨어졌다.
"이 역할이 위험부담이 커 한 명의 배우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20대 배우들을 두고 누가 더 어울릴까 한번씩 생각을 해봤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후보로 예상했던 인물의 이름을 꺼내면 제작진 안에서 꼭 이견을 내세우는 이들이 나왔다. 하지만, 송중기는 달랐다. 송중기가 어떨까라는 말이 나오자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중기씨 역시 선뜻 '늑대소년'을 선택해줘 고마웠다. 박보영 역시 순이와 제일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송중기와 박보영을 보고 '연예인이다'라며 쑥스러워했다던데.
"화면에서만 보던 분들과 이렇게 대화를 하니 참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짐승의 끝'을 찍을때 박해일 선배와 작업하면서 그 분께도 '선배와 작업하다니 실감이 안 난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박해일 선배는 워낙에 털털한 이미지라 그래도 편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송중기와 박보영은 둘다 인형처럼 생기지 않았나. 실물을 처음 보는데 마치 후광이 비치는 것 같더라."
-조명을 과도하게 사용해 눈부신 화면을 만든 이유는 역시 '판타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나.
"맞다. 화면 전체에서 촉촉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살짝 퍼지는 듯한 효과를 줬다. 조명이 너무 센 듯 하지만 우리 영화에는 평범한 화면보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철수의 어린시절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올라간다. 전쟁중 젊은 과학도 두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튼튼한 인간을 만들기위해 연구를 하던중 한 과학도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때부터 복수심에 연구의 방향을 '전사'를 만드는 쪽으로 틀어버린다. 높은 장성에게 부탁해 실험을 이어가게되는데 그 과정에서 실험대상이 됐던 사람들이 자꾸 죽어나가니 정부차원에서 이 연구를 중단시켜버린다. 그후 박사는 잠적해 시골에서 연구를 이어나간다. 전쟁통에 오갈데 없어진 여자아이 한명을 데려와 실험을 이어가게 되고 나중에 이 여자아이가 체외수정을 통해 아이를 하나 낳게 된다. 이 아이가 바로 철수다. 연구결과가 좋아 이젠 공개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는데 마침 건강이 안 좋아져 박사가 죽어버린거다."
-캐릭터의 과거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다.
"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순이와 철수의 성장기와 가족사에 대해 상세히 적어줬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과정을 일일이 보여주는게 중요하진 않을것 같아서 극중에 묘사하진 않았다."
-앞으로 '늑대소년'과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제작사가 나올텐데.
"글쎄, 그런다고 그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관객의 마음은 아무도 모르는거다. '도가니'처럼 사회적 문제점을 다룬 어두운 영화가 큰 반향을 일으킬줄 누가 알았겠나. 톱스타 없는 영화 '써니'가 그 정도로 대히트를 칠거라고는 다들 생각 못했을거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열심히 만드는게 상책인것 같다. 물론, 상업적인 결과를 의식하지 않을순 없다. 하지만, 내 자신이 원하는 걸 해나가다보면 또 좋은 반응도 얻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