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대구 동양은 32연패를 기록하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연패 기록을 세웠다. 이때 동양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한 남자는 다음 시즌을 마친 뒤 조용히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13년 10개월이 지나 이 남자는 최다 연승을 기록한 팀의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6일 끝난 2012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국내외경기 100연승 금자탑을 쌓고 초대 우승을 차지한 상무 이훈재(35) 감독 이야기다.
9년동안 상무를 이끌어온 이훈재 감독의 리더십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 감독은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LG, KT, 동부, 전자랜드 등 만만치 않은 프로팀들을 꺾었다. 윤호영, 박찬희, 강병현, 기승호 등 각기 색깔있는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치게 해 아마의 힘을 보여줬다. 상무는 KBL 2군 경기를 포함해 KBL 공식경기 83연승을 달렸고, 세계군인선수권과 농구대잔치 등을 포함해서 100연승 기록을 달성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기아 왕조'의 한 축을 맡았다. 식스맨이었지만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프로 출범 이후 동양(현 오리온스)에 입단했고 기아에 있을 때만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1998-99 시즌 굴욕적인 32연패를 당했다.
선수로서 말년은 아쉬웠지만 감독으로서는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여자농구 금호생명 감독을 거쳐 2004년 상무를 맡은 뒤 이 감독은 저력있는 경기력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008년 농구대잔치를 시작으로 4연패를 거뒀고, 전국체전 2회 우승, 윈터리그 3연패 등 숱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감독은 "프로 선수들이 군입대한 팀이라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다.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매년 선수 전력이 바뀌는 팀 사정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언제나 군(軍)팀답게 끈끈하고 패기넘치는 팀을 유지시켰고, 선수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용병술을 통해 효과적인 경기력을 펼쳐보였다.
많은 성과를 냈지만 이 감독은 늘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고 승부에 집착하기보다 선수의 장래 발전을 더 강조했다. 이 감독은 "상무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면서 "승부보다 좋은 경기력을 이어가서 프로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지도 아래 양동근, 함지훈(이상 모비스), 조성민, 김현중(이상 KT), 김동욱(오리온스), 김영환(LG), 이광재(동부) 등이 성장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제대하고 복귀해서 더 잘 되는 걸 더 많이 보고 싶다. 상무에서 농구하기를 잘했다는 말을 계속 듣는 게 늘 갖고 있는 목표다"고 말했다. 선수들을 믿는 '덕장' 이미지로 이 감독은 명장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