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장식하는 연극 `오셀로`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윤동환과 차현석 연출가가 오셀로 연기에 몰두하고 있다
"부인! 캐시오!…캐시오 이놈!…이건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피할 수 없는 파멸인가?"
연습 무대이자만 질투에 불타는 오셀로 역에 빠져든 주인공 입에서 튄 침이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극단 후암의 대표 레퍼토리인 셰익스피어 연극 '오셀로'(12월 21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는 올해 더욱 특별하다.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연극이라는 점 외에 드라마 '무신'에서 몽고군 탕꾸 대원수로 출연한 배우 윤동환(44)이 오셀로 역을 맡아 생애 첫 연극 주인공으로 나선다. 11년 전부터 '오셀로'를 제작해온 차현석(38·공연제작사 이지컨텐츠그룹 대표) 연출가와는 17년 전 드라마에서 형·동생 역으로 함께 출연했던 사이다. 연극 대사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걸려든 두 사람은 어떤 '오셀로'를 빚어낼까.
- 드라마에서 형·동생이었다가 배우·연출가로 17년만의 재회다.
차현석(이하 차) :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이틀만의 일이다. MBC 창사특집극 '전쟁과 사랑'에서 윤동환이 주인공이었고, 내가 그 동생 역할을 맡았다. 당시 나는 연극배우였다. 윤동환은 박정희 대통령을 모델로 재구성된 인물이었다. 윤동환이 장교 옷이 잘 어울리는 풍채였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 사무실 오픈식에 갔다가 우연히 다시 만났다. 윤동환의 당당한 키(182㎝)와 부드러운 모습이 오셀로 역에 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캐스팅을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윤동환 역시 대학로에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다."
- 연극 무대와의 인연은.
윤동환(이하 윤) : "1993년 '갈매기'부터 시작해 '페리클레스' '테레즈 라깽' '우리 마을' 등 몇 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연극 주인공은 처음이다. 연기 생활을 오래 했지만 무대 경험이 많지 않아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오셀로'에 캐스팅에 된 후 발성도 새로 지도받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으로 여배우와 만나게 돼 기쁘다. 예전엔 멜로 연기도 종종 했지만 요즘은 너무 악역으로 가니까 여배우를 붙여주지 않는다. '한국의 율 브리너'란 별명도 있는데."
- 이번 무대에서 보여줄 오셀로는.
차 : '오셀로'는 순결한 여자를 의심하며 분노하는 바보같은 남자의 이야기다. 지난해에는 오셀로를 강한 모습으로 부각시켜 순백의 데스데모나와 대비시켰다. 올해는 데스데모나(서지우)를 만났을 때 무장해제되고, 섬세하거나 나약한 부분을 가진 자체발광체로 오셀로를 그려낼 예정이다. 오셀로가 아내를 죽인 후 그 시체 앞에서 참회하며 울 때가 하이라이트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하겠다."
윤 : "난 원래 섬세한 남자다. 오히려 내겐 강한 걸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오셀로 캐릭터가 내게 잘 맞는다. 겉은 강한 것 같은데 속은 물러터진 남자…. 아이고가 데스데모나를 험담할 때, 오셀로가 아내에게 직접 물어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걸 못 물어보고 머리 속에서 현실화시킨다. 그런 광기나 어리석음은 현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머릿속에서 소설 쓰고 (여자를) 질투한 적 있다."
- 왜 '오셀로'를 11년째 붙들고 있는가.
차 :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인 작품이다. 오셀로의 의심을 일으킨 건 손수건 한 장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겨진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될 땐, 당사자는 호흡 곤란까지 일으키게 된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 문제 등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퍼즐 한 조각의 긴장감이 '오셀로'의 매력이다."
- 머리를 민 오셀로는 처음이지 않을까.
윤 : "가발 쓰는 건 싫다. 그러면 연기도 잘 안된다. 사극 드라마에서도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붙이는 정도다. 중·고생들이 머리를 민 오셀로를 본다면 그 모습이 평생 남지 않을까? 등장하자마자 눈빛으로 압도하겠다."
- 이번에도 챔버 오케스트라가 동원된다.
차 : "연극 '오셀로'는 12세 관람가다. 가족 단위로 보는 교양연극이 됐으면 한다. 음악에 대해선 대체로 좋은 평이지만 음악이 너무 많이 나오면 극이 죽어버릴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를 유지하돼 지나치게 강조하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