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첸밍(33)은 '대만 야구의 아이콘'이었다. 그가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할 때는 대만에 '왕첸밍 샵'이 성행할 정도였다. 그는 '국가대표'에서도 자유로웠다. 2000년 뉴욕 양키스와 계약한 그는 2005년 빅그리에 입성해 8승5패를 거뒀다. 하지만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본토에서 야구 우승으로 가장 놓은 곳에 서자"는 국민 감정이 폭발할 때도 왕첸밍은 대표팀에 나서지 않았다. 부상 우려 때문이었다. 2009년 WBC 합류도 고사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왕첸밍은 미국에서 더 큰 일을 하라'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한다. 그만큼 '빅리거 왕첸밍'은 대만 야구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
2013년, 무적(無籍)의 왕첸밍이 WBC에 나선다. 2012년 워싱턴에서 부상과 부진 속에 2승 3패 평균자책점 6.68에 그친 왕첸밍은 시즌 종료와 함께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각국의 스카우트가 모이는 WBC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야 하는 왕첸밍이 건재를 과시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한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기록상' 왕첸밍은 그동안 한국이 상대해 온 판웨이룬, 린잉지에, 린언위, 양야오쉰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수다. 대만은 국내리그 최고 투수(판웨이룬) 일본 프로야구 유망주(린언위) 미국 마이너리그 기대주(양야오쉰) 등을 한국전에 내보냈다. 한국은 이들과 대등하게 싸우거나, 우위를 보였다.
왕첸밍은 2006년과 2007년 연속 19승을 거두고, 지난해 까지 메이저리그에서 61승을 챙긴 '빅리거'다. 그의 싱킹패스트볼은 2006년과 2007년 미국 언론을 연일 장식하는 '압도적은 구종'이었다. 부상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한국으로서는 경계해야할 투수다.
한국은 3월5일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에서 홈팀 대만과 맞선다. 대만이 왕첸밍을 선발로 내세운다면 대만 팬들의 응원에는 더 큰 간절함이 서린다. 대만전은 두팀이 2라운드 진출권을 확보하고, 순위를 가르는 최종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편안하게만 생각할 수 없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라운드는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을 취한다. 한국은 조1위를 거둬야 상대조 2위와 첫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역산'해보면 대만전 승리가 4강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 타도'를 외치는 대만 야구에,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투수 한시즌 최다승을 거둔 거인이 서 있다. 한국의 WBC 첫 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