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현(28·제주 유나이티드)은 오랜만에 보는 하태균(26·상주 상무)을 보고 두 번 웃었다. 처음엔 짧은 머리를 보고, 두 번째는 말끝마다 “~습니다”로 끝나는 어투를 보면서 한참을 놀렸다. 하태균은 “말투가 안 고쳐 진다”며 멋 쩍어 했다.
영혼의 투톱이 다시 만났다. 수원 삼성 시절 국내 센터포워드의 희망으로 떠오른 두 사람은 이제 한 사람은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또 한 사람은 군인 신분으로 재회했다. 23일 저녁 훈련소에서 막 퇴소한 하태균은 그 날 밤으로 상주 상무의 전지훈련지인 제주에 합류했다.
포지션이 겹치는 두 사람은 188cm, 키도 똑 같다. 차범근 전 수원 감독 아래 2007년부터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좋은 시절도 힘든 시절도 수원에서 함께 겪었다. “형이 그 때 내 골 뺏어갔잖아. 형이 발만 안 댔어도 그냥 골이었는데.” 하태균의 타박에 서동현은 “골을 뺏으려던 게 아니었다”며 항변했다. 다시 만나 티격태격 하던 두 사람은 “그래도 우린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다시 한 번 투톱으로 뛰고 싶다”고 같은 바람을 말했다.
“형이 상주로 오면 되겠네.” 동생의 부탁에 서동현은 살짝 고민하더니 “난 제주맨”이라며 웃었다. 24일 서귀포 한 식당에서 두 사람의 수다에 동참했다.
□ 투톱의 재회
- 서로 얼마만인가.
서동현(이하 서) “지난해 12월에 다른 사람 결혼식 때 봤다. 서로 바빠 얘기는 잘 못했다.”
하태균(이하 하) “수원에 있을 때 포지션이 같아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그 때 얘기를 많이 했는데, 난 형이 제주 가선 연락을 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또 연락이 오더라. 맨날 서로 축구 얘기 한다.”
서 “내가 2006년에 입단하고 태균이가 2007년에 드래프트 1순위로 수원에 왔다. 2007년에 태균이 오면서 밀렸다. 그러나 태균이가 다치면서 2008년에 다시 기회를 얻었다(웃음).”
- 훈련소 생활은 어땠나.
하 “군대에 가야 진짜 남자가 된다. 난 지난해 12월 10일에 들어와서 1월 20일에 나왔다. 그 사이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이번에 또 화이트 크리스마스지 않았나. 남들은 좋아했지만, 아침 먹고 눈 쓸고, 점심 먹고 쓸고, 자기 전에 또 쓸고... 안 해 보면 모른다. 훈련소 원래 5주인데, 크리스마스에 신정까지 끼어서 7주 있었다.”
화생방 얘기가 나왔을 때 하태균이 “저는 괜찮았습니다”라고 답하자 서동현이 “너 괜찮았‘습니다’ 라고 하냐”며 크게 웃었다. 하태균은 “말투가 아직 안 고쳐 진다. ‘요,죠’ 이런거 쓰면 안되니까. 처음엔 군대 갔을 때 아예 말을 안했다”며 쑥쓰러워 했다.
하 “형도 군대 와야 어른 된다.”
서 “난 애기 아빠니까 이미 어른이다.” 서동현이 ‘복덩이’라 부르는 첫 딸 윤정이는 올해 4월이면 돌이 된다.
□ 추억, 그리고 수다
- 포지션 경쟁자인데, 서로 말 못할 사연이 많겠다.
서 “태균이는 키는 같지만 나보다 체격이 좋다. 차 감독님께서 파워 있는 선수들을 좋아하니까 긴장을 많이 했다. 그래도 그땐 같이 새내기라 마냥 열심히 했다.”
하 “그 때 수원에 우리를 포함해 공격수가 9명이나 있었다. 안정환 형, (신)영록이, 나드손 등 쟁쟁한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환이 형은 무서워서 말은 못 걸었지만,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걸 느꼈다. 팀 내 최고참인데 훈련 시간 전에 와서 운동을 했다. 그냥 되는 선수는 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난 동현이 형이랑 가장 호흡이 잘 맞았고 결과도 좋았다. 요즘도 언젠가 한 팀에서 뛰자는 얘기를 한다.”
-투톱으로 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서 “그 때 부산전....”
하 “아 정말... 지금도 생각하기 싫다.”
하 “2007년에 둘이 투톱으로 풀 타임을 뛰었다. 내가 어시스트를 해 형이 먼저 골을 넣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한테 찬스가 왔다. 가만히 놔두면 골인데, 동현이 형이 골대 가서 발을 갖다 대더라.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도움이라도 되는건데. 오프사이드가 돼다. 한 참 신인왕 경쟁 중이었는데 내 한 골을 형이 뺏어갔다.”
서 “그때 1-0 이기다, 후반에 1-2로 역전당한 상황이었다. 내가 건드려 오프사이드가 됐지만 사실 난 골을 넣으려던 게 아니었다. 골키퍼 키를 넘겨 이미 골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동점됐다’고 기쁜 마음에 가서 골을 차고 나온 거다. 나중에 (백)지훈이 형이 골을 넣어 간신히 2-2 동점이 됐다. 그때 신문에 서동현 천당-지옥 왔다 갔다 했다고 났었다.”
-이 사실을 하태균 선수도 알고 있었나.
하 “몰랐다. 사실 그 때 형이 미웠다. 신인왕 경쟁 중이었는데.... 그래서 거기에 대해선 그 뒤로 한 마디도 안했다. 근데 아마 그 때 알았어도 기분이 안 풀렸을 거 같다.”
서 “사실 나도 그때 말 하기가 멋쩍어 지금껏 아무 말도 안했다. 태균아 미안하다(웃음). 난 그때부터 팬들에게 엄청 욕먹기 시작했다.”
- 혹시 기억에 남는 팬이 있나.
서 “수원 팬들로부터 이적을 수십 번은 당했다(웃음).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전북 서포터스 한 분이다. 내가 전주로 경기를 갈 때마다 ‘너 아직 축구하냐’고 소리를 친다. 강원을 가고 제주를 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 번은 나도 욱 해서 ‘아직 응원하냐’고 소리칠 뻔 했다. 예전에 내가 전북전에서 어린이날 골을 넣고 들뜬 마음에 코너플래그가서 세리머니를 한 적 있는데, 그게 전북 서포터스 좌석 쪽이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시는 건지....”
하 “난 경기장 들어가면 귀를 막는다. 그럼 욕하는 소리는 안 들리고, 여학생들이 이름 부르며 파이팅 해주는 소리만 들린다(웃음).”
□ 투톱, 미래를 말하다
-K리그는 외국인 공격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서 “매번 대표팀 뽑을 때마다 공격수가 없다고 하는데 리그에서 뛸 기회가 부족하지 않나. 기회가 주어줘도 금방 사라지기 일쑤다. 아무래도 기다려 주는 시간이 적다. 그런데 성적을 위해선 팀이나 감독님 입장에선 용병을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니 우리가 적응해야 할 몫이다. 그래도 이런 위치 때문에 더 방심하지 않고 노력하게 되는 거 같다.”
하 “처음부터 같이 경쟁하기 보다 용병에게 기회를 먼저, 더 주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성적을 위해선 내가 감독이라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또 우리가 주어지는 기회를 못 잡는 부분도 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 올 시즌 목표는.
서 “지난해 12골을 넣었다. 공격포인트는 15개 였는데, 수원에 있었던 2008년 기록과 똑같아. 올해는 넘어서고 싶다. 그리고 겨울에 시상식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다. 시상식가면 부인이 입혀주는 대로 입고 갈 거다.”
하 “상무 오기 전까지 고민 많았다. 경기엔 조금씩 나갔지만 수원에서 밀려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선수로서 발전할 수 없다고 느꼈다. 상무에 오면 다 놓고 마음 편하게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위 시선이나 부담도 적고, 아무래도 기회도 많이 주어질 테니까. 하루 빨리 경기 감각을 찾아서 그 동안 못 뛰었던 거 한 없이 뛰고 나올 생각이다.”
서 “2부 리그 득점왕 해야지”
하 “그럼 형이 와서 좀 도와주면 되겠네. 안 그래도 박항서 감독님도 형이 상무에 왔으면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