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타선은 1회부터 폭발했다. 1회말 무사 만루에서 김태균이 깨끗한 2타점 좌전 적시타를 쳐냈다. 7번 우익수로 출전한 이진영은 1사 만루에서 만루포를 쏘아올렸다. 대만 선발 리전창은 볼넷 3개와 몸에 맞는 공 하나, 홈런 포함 안타 2개를 내주고, 6실점한 채 1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한국의 타자들은 대만 투수진을 더 몰아세웠다. 정근우는 6회 투런포를 쳐냈고, 이대호도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2009년 3월6일 도쿄돔에서 열린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한국-대만전에서 연출한 장면이다.
4년 전 일이다. 하지만 한국 WBC 대표팀이 꼭 재연하고픈, 그 장면이다. 마침 당시 맹활약했던 김태균(31·한화) 이진영(33·LG) 정근우(31·SK) 이대호(31·오릭스)가 모두 WBC에 출전했다. 대만전 출전도 가능하다.
2일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한국은, 대만이 네덜란드를 8-3으로 잡아내며 더 큰 위기를 맞았다. 호주전을 꼭 승리하고, 대만전에서 6점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5점차로 승리할 경우, 한국·대만·네덜란드의 득실차가 모두 0이 돼, 자책·비자책점까지 따지는 복잡한 셈을 해야 한다.
2006년 WBC 4강·2009년 준우승에 빛나는 한국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 '자력 진출'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호주전 승리와 대만전 6점차 이상 승리다. 무척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한 야구인은 "차라리 호주가 네덜란드를 잡을 확률이 더 크지 않나"라고 푸념했다. 하지만 '전례'가 있다는 점은 한국 대표팀에 희망을 안긴다. 한국은 프로 선수들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대만에 17승13패를 기록했다. WBC에서는 두 차례 만나 모두 승리(2006년 2-0, 2009년 9-0)했다.
어려운 싸움이다. 대만은 호주·네덜란드를 꺾으며 분위기를 탔다. 2승을 거두고도 어지러운 B조 상황 탓에 2라운드 진출을 확정하지 못했다. 한국전에서 힘을 비축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정서적인 문제도 있다.
대만의 '혐한 감정'은 엄청나다.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는 야구에서는 혐한 감정이 더 폭발한다. 대만에서 한국과의 국제경기가 열릴 때, 관중석에서는 '배신자 한국을 엄벌하라'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다. 1992년 8월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동시에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993년 비공식 관계 설정으로 주타이페이 한국 대표부가 개설되었지만, 대만 국민들의 반한 감정은 커져만 갔다. 대만입장에서, 한국은 '형제의 나라'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돌변했다. 야구는 대만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스포츠다. 대만 땅에서, 대만의 손으로 한국이 WBC 탈락하는 장면이 많은 대만 야구팬들이 꿈꿔던 결과다.
한국 대표팀은 불리한 상황과, 대만 팬들의 극성스러운 야유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둘을 모두 넘어선다면, WBC사에 길이남을 역사를 작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