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성(姓)씨다. 어린 시절엔 놀림 깨나 받았다. 게다가 이름까지 특이하다. 이름을 알려야하는 운동 선수로는 딱 좋은 케이스다. 이제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K리그 챌린지 FC 안양의 돈지덕(33)과 가솔현(22)은 통하는 부분이 많다. 어린 시절 별명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다. 포지션도 중앙 수비수로 같아 11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안양의 단짝이 됐다. 7일 열린 충주 험멜과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해 4-1 창단 첫 승을 이끌었다. 일명 '돈-가-S(돈가스)' 콤비다. 두 선수의 성씨에 복수형인 'S'를 붙였다.
돈지덕은 2003년 내셔널리그(실업축구) 고양 국민은행에 입단해 9년을 뛰다 안양에 온 베테랑이다. 가솔현은 고려대 축구부 주장 출신의 신인이다. 하지만 프로 데뷔 시즌인 점은 같다. 돈지덕은 "나는 늦깎이 프로 신인선수다. 가솔현과 신인의 패기로 안양의 우승을 이끌겠다. 이름을 꼭 기억해 달라"고 했다.
◇돈데크만·돈지랄…모든 별명 환영
돈 씨는 국내에 300명 이하인 희귀 성씨다. 돈지덕도 살면서 가족 외에 돈 씨를 본 적이 없다. 돈지덕은 "돈지갑·돈데크만(만화 캐릭터) 등 별명이 수십 개다. 그런데 딱히 멋있는 별명은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에는 이름이 콤플렉스였다. 돈지덕은 "덩치도 작고 싸움을 못해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특이한 이름을 활용해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돈 씨가 선수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무리 놀려도 웃으면서 넘어가니 오히려 성격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다. 이제 '돈지랄'이라는 별명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마음껏 놀려달라"고 껄껄 웃었다.
이렇게 호탕한 돈지덕도 민감한 부분이 있다. 아들과 딸의 이름이다. 행여나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수십 개의 이름을 두고 고민을 했다.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지은 별명이 돈채호(5)-채원(3)이다. 돈지덕은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친구들이 '돈채워 넣어라'고 놀리면 상처받을 것 같다"면서도 "아이들도 크면 돈 씨가 얼마나 장점이 많은 성씨인 걸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가솔린이라는 별명 너무 많이 들어 식상
가솔현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솔린'이 가장 자주 듣는 별명이다. 이제 자주 들어서 지겹다고 했다. '가오리'·'가위'·'가자미' 등 '가'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를 들어봤다. '솔현'이라는 발음이 나라 이름인 소련으로 들려 '쏘련이'라고도 자주 불린다. 어리 시절부터 덩치가 커서 '가대(大)'라는 애칭도 있다.
가솔현은 "야구 게임을 하다가 가득염이라는 선수를 본 게 가족 외에 가 씨를 본 유일한 기억이다. 이름이 특이해 오히려 팬들이 쉽게 기억해 줄 것 같다. 경기도 이기고 이름이 특이해 인터뷰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가삼현 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과 친인척이 아닌가'라고 묻자 "누군지 모른다. 높으신 분 같은데 나와 항렬이 같은 거 보니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가솔현은 김연아와 09학번 고려대 동기다. 수업도 같이 들으며 가끔 대화도 나눴다. 가솔현은 "세계적인 스타지만 대학 동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끔 대화도 했다. 내 이름이 특이해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솔현은 돈지덕이라는 이름에 대해 "나는 명함도 못 내민다. 대학 시절에 감독님이 '돈지덕이라는 수비수가 있는데 참 성실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들은 이름을 3년 넘게 기억하고 있다가 안양에서 함께 뛰게 됐다. 신기한 인연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