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왼손 투수 윤근영(27)은 지난 28일 문학 SK-한화전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연장 10회부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던 그는 5-5로 맞선 12회초 공격 때 2사 뒤 타석에 들어섰다. 지명타자 자리가 비어 투수로 배팅 라인업에 포함돼 있다가 그대로 대타 없이 타자로 나선 것이다. 불펜진이 부족한 한화로서는 윤근영을 12회말에도 마운드에게 올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윤근영은 임경완을 상대로 중전 안타를 뽑아냈다. 당연히 프로 데뷔 후 첫 안타. 윤근영은 자신도 믿기지 않는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한화 팬들에게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한화 출신 투수 중 방망이 솜씨가 좋은 선수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2001년 6월3일 청주 LG전에서 이광환 당시 한화 감독은 7-7 동점이던 9회말 1사 1·3루에서 외국인 투수 워렌 타석이 돌아오자 송진우를 대타로 기용했다. 야수를 이미 다 써버린 상태에서 동국대 시절 4번타자였던 송진우를 믿고 내보낸 것. 송진우는 그 전에도 3번이나 타석에 들어섰으나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송진우는 신윤호를 상대로 헛스윙 2개를 한 뒤 1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끝내기 안타를 때렸다. 한화의 8-7 승리. 사상 최초의 투수 끝내기 안타 기록이었다. 송진우는 "얼떨떨하다"면서도 "끝내기 안타는 1승으로 안 쳐주냐"는 농담을 던졌다.
한화 출신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매서운 방망이 솜씨를 뽐낸 투수들도 있다. 구대성(44)과 류현진(26)이 그 주인공. 뉴욕 메츠 시절인 2005년 5월22일 뉴욕 양키스전에 구원 등판해 7회초를 막아낸 구대성은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 규정상 타석에 들어섰다. 닷새 전 신시내티전에서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구대성은 멀찍이 공만 바라보다 삼진으로 물러났다. 양키스 투수는 랜디 존슨. 구대성은 시속 146㎞짜리 직구를 때려 중견수 키를 넘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이어 호세 레이예스의 번트 때 홈이 비어 있는 걸 보고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드는 묘기까지 보여줬다.
올해 LA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 역시 방망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류현진은 지난 14일 애리조나전에서 이안 케네디를 상대로 2루타 1개 포함 3안타를 때려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좌투수지만 우타석에 서는 류현진은 국내에선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나간 게 유일한 타격 기록이었다. 미국 언론은 류현진에게 '베이브 류스'라는 별칭까지 붙이며 놀라워했다. 올 시즌 타율은 0.333(9타수 3안타)다.
'잘 치는 투수'들과 한화의 인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인 빅리거 중 가장 타격이 좋았던 박찬호(통산 타율 0.179·3홈런)는 지난해 한화에서 뛴 뒤 은퇴했다. 김성한 수석코치는 1982년 프로야구 유일의 '3할 타자-10승 투수' 기록을 세웠으며 이대진 코치는 현역 시절 한때 타자로 전향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