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창원시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3프로야구 NC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경기에서 승리한 NC이호준이 모자에 묻은 케익크림을 털고 있다. 창원=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아이고, 우리 NC야. 고생 마이 했따."
아기공룡팀이 9연패에서 벗어난 날, 마산아재(아저씨)들도 함께 울었다.
NC가 지난달 30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연패 사슬을 끊었다. 김경문(55) NC 감독은 "그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못지않게 선수단을 걱정스럽게 지켜본 이들이 있었다. 30년 '순정'을 버리고 롯데에서 NC로 갈아탄 마산아재들이었다. 감격스러운 그날 밤, NC의 팬 모임인 '나인하트' 회원 10명이 경기 후 한 음식점에 모였다. 대부분이 마산 출신 아재들이었다. 걸죽한 사투리로 다이노스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끔한 질타도 했다.
9전10기, 콧등이 시큰시큰
LG는 이날 외국인 투수 리즈를 선발로 내세웠다. 지난달 11일에는 NC가 LG를 첫 승 제물로 삼았으나, 이번만은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재들의 느낌은 달랐다. 농부처럼 양말을 끌어올리고,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에서 어렴풋이 승리를 예감했다. NC 외국인 '에이스' 아담의 구위도 평소와 달랐다. 아담은 이날 6⅔이닝 5피안타(1홈런) 9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김상규(40)씨는 "오늘 경기는 아담이 수훈 선수다. 공 던지는 자체가 달라졌다. 에릭이 시범 케이스로 딱 걸려서 2군에 갔다. 이후에 정신 차렸다 아이가"라며 "이호준이 삭발도 했고, 다들 양말 끌어올리고 농군패션으로 야구하는 데 마음이 찡했다. 지난 대전 한화전에서는 사회인 야구 결승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딱 오늘만큼만 해주면 바랄 게 없겠다"며 밝게 웃었다.
나오기만 하면 두드려 맞는 외국인 투수들을 보며 속도 많이 끓였다. 팬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선발을 보내고, 야수를 데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단다. 전재우(33)씨는 "나름대로 에이스인데 하도 지니까 나중에는 마음이 아팠다. 아담이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는 힘을 만들어줬다. 그동안 말만 'ACE(아담·찰리·에릭) 트리오'였지만, 오늘은 투혼을 발휘했다. 강판될 때 열심히 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마산 아재들 너무 순해졌어
마산 야구팬들은 NC가 창단되기 전까지 롯데를 응원했다. 당시 열정적인 아저씨 팬들은 경기만 시작되면 각종 세리머니를 펼쳤다. 신승만(37)씨는 자신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중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단다. 신씨는 "하루는 어떤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마산구장 외야로 가더라. 누리한 팬티 속에 입던 옷을 다 구겨 넣어 기저귀처럼 두툼한데, 그 상태로 외야 폴을 기어올라가더라"며 "미끄러운 폴을 잡고 '착착착' 기 올라갔다. 스파이더맨이 따로 없었다. 당시만 해도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시작하는 아재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고 회상했다.
요즘엔 그런 팬들이 종적을 감췄다. 간혹 3루쪽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질주하는 아저씨들이 나오면, '코드1'이라고 불리는 경비원들이 곧바로 나서 장내를 정리한다. 화끈한 아재들이 너무 잠잠한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다. 신씨는 "이제 아재들도 아빠가 됐다. 옛날에는 술 마시고 그물을 타고 올라갔지만, 이젠 자녀들이 있어서 그러지 않는다. 구단에서도 '가족이 즐기는 NC 야구'를 홍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산 아재들의 열정이 아직은 극에 달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상규씨는 "아직 마산 아재들은 '간을 보는' 중이다. '자이언츠'를 향한 수십 년 짝사랑을 쉽게 놓지 못하고 있다. 나는 NC로 갈아탔지만, 아직도 회사 동료들은 롯데에 미련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달 감독님, 우리 NC야 기죽지 마라
이날 모인 팬들은 생업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원정경기도 모두 찾아간다. 그만큼 순도 100% 팬이라는 뜻이다. 어이없는 실책이 봇물 터지듯 나오면 다음날까지 우울하다. 그래도 자랑스러운 꼴찌 NC에는 따뜻한 말을 해주고 싶다.
이날 모임의 홍일점이었던 김미림(30)씨는 "NC의 매력은 패기다. 지더라도 쉽게 경기를 내주지 않는다. 질 때는 속상하지만, 그래도 경기장에 간다. 젊은 팀 특유의 힘이 있다. 팬들은 이런 걸 'NC 뽕'이라고 한다"며 미소지었다. 야구를 보며 희로애락을 느낀다. 김상규씨는 "NC를 보면 기쁘다. 추억을 쌓는다"며 "잡힐 게 뻔해도 1루까지만 질주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넥센에서 새로 온 박정준이나 지석훈 선수처럼 절실함을 잃지 말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김경문 감독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신씨는 "감독님께서 제일 힘드실 것이다. 당장 이기려고 하면 로테이션 '꼼수'도 부릴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먼 미래를 보고 팀을 구축해야 한다. 승부욕이 강한 분이라고 들었다. 조금 여유를 갖고, 지금처럼만 씩씩하게 이끌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