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유신고 총동문회장에는 최정(26·SK)과 배영섭(27·삼성)의 어머니들이 발걸음했다. 30회 졸업생인 아들들이 해외 전지훈련에 가 있어 대신 '자랑스러운 유신인상'을 수상하기 위해서였다. 4개월이 지난 지금, 고교 동기동창인 두 타자는 프로야구 타격 부문을 휩쓸고 있다. 배영섭은 20일 현재 타율 1위(0.363)를 달리고 있고, 최정은 홈런(12개)과 타점(39개)에서 선두에 올라 있다. 타율(0.352)은 배영섭에게 1푼1리 뒤진 2위다.
둘은 고교 시절 유신고 전력의 핵심이었다. 최정은 시속 140㎞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는 에이스였다. 주로 외야수로 활약했던 배영섭은 최정의 뒤를 이어 투수로도 자주 나섰다. 타격 역시 배영섭이 3번, 최정이 4번으로 타선을 이끌었다. 3학년인 2004년, 배영섭과 최정은 각각 타율 0.458, 0.500을 기록했다. 마운드에선 6승과 9승을 챙겼다. 유신고는 둘의 활약을 앞세워 그해 대통령배 고교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 배영섭은 "그때 이미 격차가 컸다. 정이는 전국구 스타였고, 나는 우리 학교에서만 유명했다"며 웃었다.
고교 졸업 후 둘의 진로는 엇갈렸다. 2004년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최정은 2005년 SK에 1차 지명되면서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이어 2년차인 2006시즌, 12홈런을 때리며 '소년장사'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등 공수를 겸비한 대한민국 대표 3루수로 성장했다. 반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배영섭은 동국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잠재력을 꽃피운 배영섭은 2009년 삼성에 4라운드 전체 28번으로 지명됐다. 2011년 주전 선수로 성장한 배영섭은 데뷔 3년 만에 신인왕에 오르면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올 시즌 배영섭과 최정이 동시에 활약하면서 둘의 관계는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최정은 "영섭이는 고교 때부터 손목 힘이 좋고, 배트 스피드도 빨랐다. 특히 공을 몸에 붙여놓고 치는 걸 잘 했다"며 "그게 프로에 와서도 영향을 발휘해 좋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교 동창이 서로 잘 돼 기분이 좋다. 경쟁의식이 있다기보다는 서로 잘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배영섭은 "최정과 자주 연락은 하지 못한다. 연말에 유신고 행사가 있는데, 그때 이야기를 나눈다"며 "친구로만 봐달라. 정이와 나를 '선수'로 비교하는 건, 정이에게 실례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정은 홈런·타점 1위다. 이미 한국 프로야구 최고 선수 아닌가. 최정이 멋있고, 부럽다"고 친구를 더 위로 올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