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이 영웅이 됐다. 아르연 로번(29·바이에른 뮌헨)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로번은 26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2013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로번은 후반 15분 마리오 만주키치의 선제골을 도왔다. 도르트문트가 8분 만에 알카이 귄도간의 페널티킥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팽팽하던 승부를 가른 것은 로번이었다. 그는 프랑크 리베리의 뒷꿈치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슛으로 결승골을 뽑았다. 2000-2001시즌 이후 12년 만에 유럽 정상에 오른 바이에른 뮌헨은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네덜란드 출신인 로번은 UEFA 챔피언스리그와 인연이 없었다. PSV 에인트호번(2002~2004·네덜란드)과 첼시(2004~2007), 레알 마드리드(2007~2009·스페인) 등 명문 구단을 두루 거쳤지만 그가 있을 때 유럽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2009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며 세 차례 기회를 잡았다. 2009-2010시즌에도 결승에 올랐는데 당시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인터밀란(이탈리아)에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로번은 선발로 나섰지만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2011-2012시즌에 맞이한 두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악몽이었다. 로번은 첼시(잉글랜드)를 상대로 경기 중에 페널티킥을 놓쳤고, 승부차기에서도 실축하며 패배의 원흉이 됐기 때문이다. 일부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로번을 팔아버려라'고 비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올시즌 그의 입지는 좁았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정규리그 34경기 중 16경기 출전(5골)에 그쳤다. 팀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그는 활짝 웃지 못했다. 로번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앞두고 절치부심했다.
이날 결승에서도 로번은 수 차례 기회를 놓쳤다. 두 번이나 로만 바이덴펠러 골키퍼와 맞서는 상황이 나왔지만 성공시키지 못했다. 로번은 얼굴을 감싸쥐며 괴로워 했다. 지난 시즌 악몽이 떠오르던 찰라, 그는 경기 종료 직전인 43분 결승골을 넣었다. 골 뒷풀이를 마친 뒤 바이에른 뮌헨 서포터스 앞을 당당하게 걸어나갔다. 팬들도 그에게 박수를 쳐줬고, 한 팬은 그의 이름이 새겨진 휘장을 건냈다. 로번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이를 받아들었다. 역적이 영웅이 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