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44) LG 감독이 변했다. 불펜을 한박자 빨리 투입하는 교체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LG는 선발의 조기 강판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너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발 투수가 3실점 이하로 비교적 잘 던지고 있는데 5회를 채우지 못하는 경기가 많다. 26일 SK전에서 류제국은 무실점하고 있던 5회 1사 만루에서 내려왔다. 우규민은 24일 SK와 경기에서 4이닝 3실점한 뒤 5회 교체됐다. 4-3으로 앞선 5회 선두타자 김상현에 안타를 맞자마자 바뀌었다.
◇ 빠른 선발 교체, 불펜을 믿는다.
투수 교체는 다음 투수가 현재 투수보다 타자를 처리할 확률이 높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이뤄진다. LG의 사정엔 빠른 투수 교체가 적합할 수 있다. LG는 선발보다 불펜이 강하다. 선발 평균자책점이 7위(4.19)인 반면, 불펜 평균자책점은 전체 1위(3.12)에 올라 있다.
김기태 감독은 선발의 약점을 탄탄한 불펜으로 메우고 있다. 선발을 계속 끌고 가 점수를 더 줄 바에야 빨리 걸어잠그는 게 낫다고 봤다. LG는 시즌 초반만 해도 불펜 투수가 보통 6회부터 올라왔지만 지금은 4회나 5회에도 불펜 투수가 나온다.
데이터대로 이런 작전은 잘 들어맞고 있다. LG는 지난 주 4승2패로 선전했다. 2승은 선발 투수 리즈와 주키치가 거뒀고, 나머지 2승은 불펜 투수 이동현과 봉중근이 챙겼다. 각각 우규민과 류제국이 빨리 내려간 경기를 불펜이 점수를 내주지 않고 잘 끌고 갔다. LG가 5월 거둔 7승 중 4승이 불펜 투수의 몫이었다.
◇ LG 역대 최강 불펜
LG는 최강 불펜을 자랑한다. 선발이 조금 흔들리면 이동현이 나가 경기를 진정시킨다. 그는 평균자책점 1.61로 1승 1세이브 5홀드를 기록 중이다. 이동현 다음엔 정현욱이 등판한다. 그 역시 2승 1세이브 8홀드에 평균자책점 2.25로 28억6000만원 몸값을 하고 있다. 마무리 투수 봉중근은 철벽이다. 평균자책점 0.59로 삼성 마무리 오승환(0.61)보다 점수를 더 안 준다. 15⅓이닝 동안 단 1실점했다. 세 선수 사이사이에 원포인트릴리프 류택현과 이상열이 왼손 타자 처리를 위해 나선다.
지난 주 4승2패를 하는 동안 LG 불펜은 평균자책점 1.89로 경기 중·후반 상대 타자를 꽁꽁 묶었다. 1점 차 승리 3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한 것도 선발 투수 교체와 불펜 투수의 호투 덕분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경기를 잡아야 겠다는 판단이 서면 불펜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불펜 중심 야구는 선동열 KIA 감독이 삼성 시절 즐겨썼다. 그는 선발 투수를 빨리 내리고 중간과 마무리 투수로 승부를 봤다. 선발의 약점을 불펜으로 상쇄하는 선동열식 지키는 야구였다. 그러나 선 감독은 현재 KIA에서 그런 교체를 즐겨쓰지 않는다. KIA 선발이 강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에서다.
LG는 선 감독이 맡았던 삼성처럼 선발이 비교적 약하다. 특히 토종 투수 가운데 경기 후반까지 믿고 맡길만한 이닝이터가 없다. 1승을 거두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불펜 가동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선발의 성장을 기다린다.
전문가들은 불펜 중심의 야구는 시즌 중·후반 과부하가 걸려 탈이 난다고 지적한다. LG는 한창 순위 싸움이 치열한 여름에 무너지곤 했다. 불펜이 강해졌다고 평가받은 지난 시즌에도 경기가 거듭될수록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김기태 감독은 불펜 투수 관리에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다. 점수 차가 꽤 벌어진 경기는 아예 선발 투수를 길게 끌고 가 불펜 투수를 쉬게 한다. 선정락은 25일 SK전에서 9회 1사까지 책임졌다. LG는 1-5로 졌지만 신정락이 긴 이닝을 책임져준 덕분에 26일 경기에 불펜 투수 5명을 쏟아부어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김 감독은 '리드하거나 접전인 경기는 짧게, 지고 있는 경기는 길게'의 융통성 있는 투수 교체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규민, 신정락, 류제국 등 토종 선발의 성장도 기다리고 있다. 선발이 자리를 잡아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