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의 최종예선 경기에서 최강희 감독은 단 한 번도 같은 선발을 내지 않았다. 4승 2무 2패를 기록하는 동안 모두 달랐다. 1~2차전을 제외하면 경기력이 형편 없었다. 선굵은 축구를 일관해 전술이 40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을 들었다. 일각에서는 최강희 감독이 지휘한 20개월 동안 한국 축구는 발전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최 감독 스스로 "실험을 해봐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18일 이란과 경기를 앞두고도 "지동원을 쓰지 않았다. 한 번 실험해봐야 한다"고 했다. 최 감독은 최종예선을 차기 감독을 위한 실험무대로 삼은 것이다. 후임 감독이 빠르게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려면 최 감독이 비난을 감수하면서 남긴 8번의 실험노트를 꼭 숙지해야 한다.
◇ [1차전]2012년 6월 8일(카타르 도하)
포진=최종 예선 첫 경기에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 원톱 카드를 꺼내들었다. 좌우 날개에는 김보경과 이근호를 배치했다. 이청용은 부상으로 명단에 없었다. 허리진은 공격형 미드필더에 구자철을 놨고, 기성용과 김두현이 뒤를 받치게 했다. 수비라인은 박주호-이정수-곽태휘-최효진으로 꾸렸다. 기본적인 컨셉은 원정을 떠난 한국이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을 시도한 경기였다.
경기내용=한국은 이날 전반 22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다. 다행히 실점 후 4분 만에 이근호가 김보경의 크로스를 받아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10분에는 곽태휘가 김보경의 코너킥을 머리로 돌려놔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19분엔 김신욱이, 후반 35분엔 이근호가 승부에 쐐기를 박는 득점을 했다.
평가= 좌우 날개 김보경과 이근호의 연계가 좋았다. 또한 후방에서 기성용-김두현이 풀어주는 패스 플레이 역시 예리했다. 다만 김두현의 기동력이 떨어지며 곽태휘의 수비부담이 커진다는 약점이 지적됐다. 실점 장면도 얇아진 수비라인이 문제였다. 곽태휘는 상대 공격수를 혼자 막는 상황이 됐고, 무너지며 실점을 허용했다.
◇[2차전]2012년 6월12일(한국 고양)
포진=1차전 선발에서 3명이 바뀌었다. 공격을 풀어내지 못했던 구자철 대신 김보경이 중앙으로 나왔다. 대신 왼쪽 측면에 염기훈이 출전했다. 허리진에서 활동략이 제한적이었던 김두현 대신 김정우가 기성용과 호흡을 맞췄다. 수비에서 아쉬움을 보여준 최효진도 오범석으로 교체됐다. 전체적인 전형은 카타르와 1차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손흥민이 최종예선에선 처음으로 교체투입됐다.
경기내용=한국이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최고의 경기력이었다. 가운데로 이동한 김보경은 날선 공격력을 뽐내며 2골을 뽑았다. 부상을 당한 기성용을 대신해 들어온 구자철이 쐐기골을 넣으며 한국은 기분 좋게 2연승을 달릴 수 있었다.
평가= 이날 신태용 일간스포츠 해설위원은 "김보경은 박지성이 그 나이였을 대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보경의 위치 변화에 따라 한국은 4-3-3에서 4-4-2를 오가며 레바논을 괴롭혔다. 김보경은 좌우 염기훈-이근호의 패스를 하나 씩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날 2골을 넣은 김보경은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최전방 이동국은 활동량이 떨어지며 고립된 경우가 많았다.
◇[3차전]2012년 9월11일(우즈벡 타슈켄트)
포진= 2차전과 3차전 사이 한국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이때부터 박주영과 이동국 조합이 논란이 됐다. 최강희 감독의 첫 선택은 이동국-이근호 투톱이었다. 2차전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좌우풀백도 박주호와 고요한으로 교체했다. 허리진에는 FC서울의 상승세를 이끌던 하대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경기내용= 기성용의 자책골로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 다행히 상대도 똑같이 자책골을 넣었다. 이동국은 이날 최종예선에서 첫 골을 등록했다. 그러나 한국은 2분 만에 실점하며 동점을 허용했다.
평가=이때부터 최강희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올림픽 멤버가 대거 합류하면서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경기에서도 똑같은 코너킥 상황에서 2실점을 했다. 세트피스가 약점으로 꼽히기 시작한 것도 우즈벡전부터다. 하대성과 기성용 조합도 두 선수 모두 공격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허리진을 장악하는데 유용하지 못했다. 후반 10분 김신욱, 후반 29분 박주영이 연달아 투입되며 이동국과 발을 맞췄지만 짜임새 있는 연계 플레이가 나오진 못했다.
◇[4차전]2012년10월16일(이란 테헤란)
포진=최강희 감독의 애제자 이동국이 처음으로 선발에서 빠진 경기다. 대신 박주영과 김신욱 투톱이 나왔다. 허리진에서는 기성용이 좀더 공격적인 역할을 받았다. 올림픽 때부터 호흡을 맞춘 박종우가 기성용을 뒤에서 보좌했다. 왼쪽 풀백에 올림픽 대표팀이었던 윤석영이 나온 것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이정수-곽태휘 중앙 수비라인이 바뀌었다. 인천에서 맹활약하던 정인환이 처음으로 선발로 나온 것이다.
경기내용=이란 원정에서 한국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경기내내 이란을 몰아쳤다. 그러나 역시 약점인 세트피스에서 실점해 무너졌다.
평가= 세트피스의 약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기다. 포백에서 3명의 선수가 바뀐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날 경기 전에 12일은 A매치 데이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평가전을 잡지 않았다. 의아한 부분이었다. 조직력을 갖출 시간이 없던 대표팀은 결국 패했다. 박종우-기성용 조합은 단단했지만 투박했다. 김신욱이 2선으로 내려오며 경기했는데 이때부터 '뻥축구'의 조짐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