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편성'여부가 드라마의 흥행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다. 색다른 소재, 탄탄한 스토리, 영화같은 영상미를 앞세운 진화된 케이블 드라마(이하 '케드')가 드라마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올상반기만 봐도 tvN'나인', '푸른거탑'등 케드들이 화제성과 작품성에서 지상파 드라마를 압도했다. 젊은시청자들이 '케드'로 대거 유입되면서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도 예전만 못하다. 송승헌·신세경 등 막강 캐스팅을 자랑했던 MBC 수목극 '남자가 사랑할 때'는 동시간대 1위를 했지만 1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 했다. 한 자릿수로 떨어졌을 때도 있었다. 특히 20~40대 타깃 시청률에선 '케드'의 존재감은 더욱 막강하다. 'B급 연기자만 나오는 유치한 드라마'라며 찬밥신세였던 '케드'가 전성기를 맞게 된 이유는 뭘까.
▶'나인'·'몬스타' 등 다양성으로 인기몰이
'케드' 시장의 히트상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달에 한 편이상 꾸준히 케이블 신작도 쏟아진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 중 소재와 장르가 겹치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뻔한 '가족드라마', '신데렐라 스토리' 등 평범한 내용은 찾아볼 수도 없다.
올 상반기 대표작은 tvN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 향을 피울 때 마다 주인공 이진욱이 타임슬립을 한다는 독특한 내용을 그렸다. 방송이 될 때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나인'이 집어삼켰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 입어 주인공 이진욱은 '연기남'으로 불리며 몸값이 한껏 치솟았다. KBS '스파이 명월(11)'과 SBS '유리의 성(08~09)' 등 지상파 전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 보다 파급력은 훨씬 대단했다.
tvN '푸른거탑'(수요일 밤11시)도 성공한 케이블 드라마다. 동시간대 SBS '짝'·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등 쟁쟁한 지상파 예능과 맞대결하지만 절대 뒤지지 않는다. 군대 소재 시추에이션극으로,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여성시청자들에게는 '금녀의 구역'을 훔쳐보는 재미와 흥미를 안겨줘 '인기 드라마'로 떠올랐다. 톱스타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지만 평균 시청률은 2% 전후. 특히 30대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평균시청률은 3%, 최고 시청률은 4%를 훌쩍 넘는다. 군대 다녀온 30대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선 지상파 예능까지 포함, 동시간대 1위다.
재난수사물 OCN '더 바이러스'와 정통수사물 OCN '특수사건 전담반 텐'은 '미드'(미국 드라마) 팬들을 끌어안았다. '더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특수감염병 위기대책반의 활약을 완성도 높게 그려냈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이 드라마의 질을 높였다. '텐'은 강력 범죄를 파헤치는 특수사건전담반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담아냈다.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인물간의 심리도 극의 묘미를 살리며 수사물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tvN '몬스타'는 생소한 뮤직 드라마다. '신(新) 장르'를 보는 재미를 준다.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 기둥 줄거리는 뻔하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와 매회 배우들이 선보이는 노래로 볼거리를 가득 채웠다. 지난 14일 방송 5회 만에 평균 시청률 2%대를 기록하며 케이블 동시간대1위를 차지했다.
▶불륜·막장 걷어낸 신선한 이야기+ 반 사전제작 = 케드 성공
'케드'의 성공 포인트는 새로운 시도를 통한 차별화 전략이다. 지상파가 10년 전과 다름없이 출생의 비밀과 막장 소재를 내세우고, 리메이크작을 선보일 때 '케드'는 소재와 장르에서 다양성을 추구했다. 지상파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볼거리에 대중들의 관심이 케이블로 향했다.
케이블 채널 편성 담당자는 "지상파 드라마에는 공식 코드가 있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륜 소재를 다루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다. 막장 드라마가 아닌 드라마는 대부분이 일본 리메이크작이다. 시청률을 염두에 두니 새로운 드라마를 창작해내지 못 하는 거다. 반면 케이블은 보편적인 스토리를 다루지 않는다. 콘텐츠가 일반화되면 지상파와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케이블 드라마가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스타=흥행'이란 공식이 깨진 것도 '케드' 인기 상승에 큰 보탬이 됐다. 김태희를 주연으로 내세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시청률·화제성 어느 하나도 잡지 못했다.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고, 주연배우는 연기력 논란 등에 휩싸였다. 신하균·이민정을 내세운 SBS '내 연애의 모든 것'도 5%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종영했다. 스타 캐스팅을 앞세운 지상파 드라마가 큰 성과를 얻지 못하자 시청자들은 배우의 인기 보다는, 스토리와 소재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케드'의 반 사전제작시스템이 꼽힌다. '나인'과 '몬스타' 등 대부분의 케이블 드라마는 반 사전제작 시스템을 도입했다. 30%이상 드라마를 찍은 뒤 첫 방송을 해 드라마 촬영장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쪽대본'을 없앴다. 덕분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케드'의 선전에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론'도 떠오르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지상파가 보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면 곧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모바일 및 인터넷 다운로드 조회수 등을 반영해 시청률을 집계하는 방식이 도입된다면 케이블 드라마는 더욱 막강한 힘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경쟁력이 있는 케이블 드라마가 시청률까지 끌어안으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