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오버 그라운드를 아울러 지난 10년여간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팀은 넬이 거의 유일하다. 척박한 국내 록 음악 환경 속에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먼저 넬이 고수해온 '힐링뮤직'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의 다친 감성을 끌어안고 음악으로 치유하겠다는 거다. 여러 가지 감성과 감정을 드라마틱하면서도 수려한 멜로디와 가사로 녹여낸다. 팬들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오래 사랑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넬은 최근 '힐링뮤직'의 과정을 좀 더 세분화해 '작품'을 내놓고 있다. '그래비티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지난해 첫 번째 싱글에 이어 최근 두 번째 싱글 '이스케이핑 그래비티'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버리고 싶은 감정을 떨쳐내는 모습이 주제다. 대중의 마음 속 깊은 병을 진단해 치료까지 해주는 느낌. 벌써부터 3부작 마지막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그래비티(중력) 3부작' 중 2번째 싱글이다. 중력이라는 건 뭘 의미하는가.
"중력은 모든 사람에게 작용한다. 하지만 느낄 수 없고, 피해갈 수도 없다. 난 중력을 그리움·좌절감 같은 감정으로 봤다. 여러 감정 역시 존재하지만 꼭 느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싱글이 '홀딩 온 투 그래비티'로 감정을 붙잡고 있는 상태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는 '이스케이핑 그래비티'로 좌절감이라던지 극복해야할 대상을 벗어나는 과정을 그렸다."(김종완)
-타이틀곡 '오션 오브 라이트'에서는 꿈을 이야기한다.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넬의 곡에는 항상 많이 등장하는 주제다. 밴드 멤버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 꿈이다."(김종완)
-이번 앨범은 전작보다 매끈해졌다는 느낌이 있다.
"사운드 프로듀싱·믹싱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지금 더 완숙미가 생겼을 것이다. 편곡이나 사운드 믹싱에서 매끈한 느낌이 있을 수 있다."(김종완)
-수록곡 '번'에서는 '놀아나지 말고 너의 소릴 들어, 시덥지 않은 놈들 짖게 놔둬…' 등의 센 가사가 있다.
"동생들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고민이 많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먼저 살핀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하지만 진짜로 내가 원하는게 어떤 건지 알고, 그걸 향해 가는게 중요하다. 꿈이라면 한 번 부딪혀 보는게 중요하다."(김종완)
-제대 후 발표한 곡 중에는 '스테이''땡큐''백색왜성' 느낌의 대중적인 곡들이 없다. 음악적인 방향이 달라진 건가.
"방향이라기보다는 10년 전이랑 지금의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달라졌다. 잘 다루지 못했던 악기들이나 프로그램들이 익숙해지고 새로운 사운드들을 시도하다보니,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싱글에서는 대곡 스타일의 곡들을 선보일 생각이다. '백색왜성' 느낌의 곡들은 정규 앨범에 담길 것 같다."(김종완)
-이번 앨범에서 꼭 자랑할 만한 부분은.
"마스터링 작업을 미국과 영국에 동시에 보냈다.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영미권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냈고 결과물을 듣고 싶었다. 뭐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확연히 다르더다. 사실 해외 유명 엔지니어와 작업하면,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우린 그런 부분은 느끼지 못했다."(김종완)
"결과물이 좋으니까 그분들을 선택하는 거다. 엄청난 프로 아닌가. 작업에 소홀히 해서는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이재경)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순위 프로그램은 프로모션의 일환이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서 굳이 라이브를 하고 싶지는 않다. 라이브는 콘서트에서 하는게 맞다. 사실 라이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좋은 사운드가 나올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김종완)
"핸드 싱크라 소리가 나오지 않을 뿐이지 연주는 하고 있는 거다. 재미있다. 우리 음악 연주하는 거라 의외로 연습이 된다."(이재경)
-넬의 음악은 항상 트렌디하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트렌디해야된다는 강박은 없는데 의도하지 않게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기술적인 부분을 포함해 현대 음악에 맞춰가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 또한 스스로 그런 부분을 항상 견지하려고 한다. '오래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롤링스톤즈 믹 재거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우릴 반사회적인 밴드로 기억하지만 우린 항상 트렌디한 밴드였다'는 거다."(김종완)
-넬은 음악적인 변절을 싫어한다고 들었다.
"변해서 잘하고 그들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상관없다. 겉핥기식의 변화라던가 변화를 위한 변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평가를 한다. 이게 맞는 변화인지 변화를 했을 때 퀄리티가 잘 나오고 있는지…. 서로에게도 냉정하게 충고를 한다."(김종완)
-넬은 힐링음악을 한다. 근데 분위기는 우울한 곡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우울하거나 치료받고 싶을 때 신나는 음악을 찾지는 않는다. 차분하거나 우울한 음악에 공감하면서 힐링하는 거 같다."(김종완)
-일본에 진출했다고.
"앨범 라이센스 발매를 하면서 쇼케이스를 했다. 활동까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냥 갔다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들어올 수도 있다."(김종완)
-일본어 준비는 하고 있나.
"조금씩은 하는데 노래는 한국어나 영어로 하지 않을까. 일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다면 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기에는 머리가 썩은 것 같다. 근데 나 일본어학과에 입학했었다. 하하."(김종완)
-멤버들에게 넬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의 전부다. 20대의 전부를 넬로 보냈다. 20살에 시작해서 이제 34살이다. 뭔가 생각할 수 있는 나이를 넬로 보낸 거다. 그걸 빼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이정훈)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다. 젊은 친구들이 부러운가.
"동네에서 술을 마시는데 고등학생들이 지나가더라. 학원이 끝났는지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는데 멤버들에게 말했다. 내가 자살을 한다면 늙어서일 것 같다고. 아무리 성공한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젊음은 다시 얻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어린 친구들을 보면 항상 부럽다."(김종완)
-요새 고등학생들은 넬을 얼마나 알까.
"그렇게 유명하지는 안을 거 같다. 그래도 음악하는 고등학생들은 우릴 알지 안을까. 그들 사이에서는 먹어준다."(이재경)
"그 당시에 친구들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게 중요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넬의 음악도 소양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김종완)
-넬은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일흔살의 롤링스톤즈가 어떻게 음악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할아버지 나이에 굉장히 열정적이다. 우리가 그 나이가 되려면 40년은 더 먹어야 하는데 그 때도 하고 싶은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이재경)
"조용필 선배도 존경한다. 정말 적절한 시기에 잘 나와주신 것 같다. 아이돌 음악 시장에 뭔가 다른 한 방이 있어야 할 시점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아이콘이다. 주변에서 조용필 선배 앨범을 듣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길 많이 한다. 사운드적으로도 워낙 완성도가 있는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김종완)
-넬에게 서태지란 어떤 존재인가.
"우상이다. 우리 세대에서는 최고의 스타였다. 평생 좋아할 것 같다. 한국에서 음반이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일게 하는 몇 되지 않는 뮤지션인 것 같다."(김종완)
-10년이나 함께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넬에) 좋은 게 더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 돈 때문은 아닌 거 같다. 음악적인 상황이 잘 맞는다."(정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