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시구판이 연예인들로 북적되고 있다. 프로야구 700만 관중 시대가 열리면서, 연예인들에게 그라운드는 홍보의 장이 됐다. 홍수아를 시작으로 클라라 등이 시구로 화제를 모아, 스타로 떠오르면서 연예계가 '시구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너나 할 거 없이 시구를 부탁하면서 연예인과 구단 사이의 '갑을' 관계도 바뀌었다. 과거 시구를 부탁하기 위해 프로야구 홍보팀이 연예 기획사에 일일이 전화를 걸던 시대는 끝났다. 특급 연예인의 경우, 여전히 섭외가 어렵지만 B급 연예인이나 신인급의 경우 시구하기 위해 사돈의 8촌까지 줄을 댄다. 연예인이 갑, 야구단이 을이던 관계가 정확하게 반전된 셈이다.
연예인들의 시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 걸까. 섭외부터 시구사례품까지 연예인 시구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
▶시구는 아무나 하나
최근 걸그룹을 제작한 연예기획자 A씨. 방송 출연 이상 홍보 효과가 탁월하다는 프로야구 시구를 부탁하기 위해 서울 연고 프로야구팀의 홍보실을 찾았다. 하지만 "인지도가 낮아서 불가하다"는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왔다. 포기할 수 없어 홍보팀에 연줄이 닿는 사람을 찾았다. 홍보팀 직원과 친구 사이인 지인에게 찾는데 성공했다. 겨우 시구 대기자 명단에 드는데 성공했지만 등판일은 두 달 뒤로 잡혔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밖에 시구 기회가 없기 때문에 최소 한 두 달 대기는 기본이었다. 서울 목동을 홈구장으로 쓰는 넥센 히어로즈의 경우에도 7월초에 8월말까지 '시구 부킹'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A급 스타들의 경우, 아직도 구단에서 먼저 요청을 받는다. '급'이 높은 연예인의 경우 포스트시즌이 아닌,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등 포스트시즌에 등판하는 것이 기본이다.
서로의 홍보 효과를 보고하는 행사 개념으로 별도의 시구비는 없다. 연예인은 시구 한 번에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탁월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시구비는 커녕, 돈을 지불해야할 판이다. 대신 소정의 선물을 증정 받는다. 선수들의 사인 유니폼으로 전 구단이 동일하며 시구 때 사용한 글러브는 구단에서 회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구 행사가 단순한 시구의 개념을 넘어 인기를 끌다보니, 단순한 시구로는 이슈 몰이가 쉽지 않다. 강속구를 뿌리기 위해 전직 야구 선수에게 일주일 교육을 받기도 하고, 몸에 딱 붙는 팬츠와 셔츠를 입고 공을 뿌려 '남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클라라·신수지 등 화제의 시구자를 캐스팅한 두산 베어스 이왕돈 차장은 "지금보다 야구 열기가 뜨겁지 않았던 2007년부터 프로야구 시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야구가 딱딱한 스포츠였는데 시구를 활용하면서 야구 경기 전 볼거리로 정착된 것 같다"고 소개했다. 이어 "섭외의 첫 번째 원칙은 스타가 야구를 좋아하고, 두산 베어스에 애정이 있는가이다. 다른 팀은 모르지만 두산의 경우 홍보를 목적으로 한 연예인에게는 시구를 부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LG·두산·넥센 등 서울팀이 최고 인기
시구하기가 아무리 어렵다지만 시구팀 선정은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시구자로 선정되면, 다른팀에서는 시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시구에도 해당 팀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홍수아의 경우 두산 베어스에서 시구를 해, '개념시구'로 시구계의 새장을 열었다. 야구팬들은 홍수아의 투구가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투구폼을 닮았다며 '홍드로'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 이후 시구 섭외가 쏟아졌지만, 두산을 제외하고는 시구하지 않는 것을 첫 번째 원칙으로 두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신혜의 경우도 광주가 연고인 기아 타이거즈 시구만을 고집한다. 박신혜의 고향이 광주이기 때문이다.
박신혜의 소속사 관계자는 "'랜디 신혜'라는 애칭을 얻는 등 시구가 화제를 모으자, 이팀 저팀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학교(중앙대) 행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타를 맞은 두산 베어스를 제외하고는 시구를 하게 되면 무조건 기아 타이거즈라는 원칙을 세웠다"고 전했다. 반대로 프로야구 마니아인 이휘재는 기아·두산·현대·삼성 등을 옮겨가며 시구자로 나섰다가 야구팬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연예인이 선호하는 구단도 따로 있다. 가장 선호하는 구단은 서울이 연고인 두산·LG·넥센이다. 지역적으로 가까운데다가, 팬층도 확실한 인기팀이라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지방에 위치한 구단은 연예인 선호도가 떨어진다. 연예인 시구를 주기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개막전 등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 특징. 부산 출신의 영화배우 조진웅은 롯데 자이언트의 골수팬으로 알려져 롯데 개막전 시구를 맡았다.
연예인 시구가 가뭄에 콩나 듯, 드문 구단도 있다. SK 와이번즈 관계자는 "SK의 경우 한국시리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연예인 시구가 거의 없다. 연예인 보다는 시구를 해 본적 없는, 다문화 가정, 장애인, 지역 대학교 관계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