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터키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U-20 대표팀이 9일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했다. 이들은 놀라운 열정과 투혼으로 8강에 오르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무색케했다. 특히 연장 막바지에 실점해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동점골을 뽑아낸 이라크와 8강전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21명의 선수 중 4명을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승부차기 중압감을 두 번이나 견뎌낸 골키퍼 이창근(20·부산), 콜롬비아와 16강전에서 선제골과 페널티킥 실축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중앙 수비 송주훈(19·건국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발목을 다쳤지만 1·2차전에서 연속골을 넣은 미드필더 류승우(20·중앙대), 이라크와 8강전에서 교체 투입돼 동점골을 터트린 공격수 이광훈(20·포항)을 인천공항 인근 호텔에서 만났다.
나이는 송주훈이 한 살 어리지만 학년이 같아 모두 친구다. 한참 장난 많을 나이라 티격태격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가짐이 인터뷰에서도 느껴졌다. 이들은 “우리팀이 스타가 없다고요? 우리는 21명이 모두 스타예요”라고 외쳤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솔직히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이창근(이하 창근) "분명 8강 이상 갈거라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AFC U-19 우승 멤버라 우리끼리는 최약체란 생각을 한 번도 안했거든요. 콜롬비아와 16강전 후 만약 문창진(허리), 김승준(맹장염)이 부상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일찍 떨어졌을거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둘에게 의존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대신 팀 전체가 그들 몫까지 해내겠다는 책임감을 가졌어요. 골키퍼라 맨 뒤에서 봤는데 다들 정말 미친듯이 뛰더라구요. 아, 이게 팀이구나 싶었어요."
이광훈(이하 광훈) "최약체란 혹평에 모두가 오기가 생겼어요. 축구는 개인이 아니라 팀 스포츠잖아요."
류승우(이하 승우) "8강에 올라가니 결승 진출도 꿈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광훈 "죄송합니다. 제가 이라크와 8강전 승부차기 못넣었습니다.(ㅜㅜ) 동료들이 '여자친구 보러간다 슛'이라고 놀렸지만 정말 미안해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래도 172cm 단신 이광훈이 이라크전에서 2-2가 되는 헤딩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3-3을 만든 수비수 정현철(동국대)의 버저비터골도 화제가 됐죠.
창근 "광훈이가 헤딩이 좋아요. 프로 데뷔전이었던 지난 3월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과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헤딩골을 넣었는걸요."
광훈 "헤딩은 키로 하는게 아니라 위치선정으로 하는거에요. 후후."
송주훈(이하 주훈)="광훈아 넌 헤딩 멀었어."
창근 "헤딩하면 주훈이죠. 키도 큰데 머리까지 커요. 하하. 근데 광훈이는 머리로 넣고, 주훈이는 발로 넣고. 둘이 바뀌었어요. 현철이의 버저비터골은 '국민들 TV 끄지마세요 슛'이었죠. 사실 팀원들 전부 안들어갔다는 생각에 장탄식을 했어요. 상대 머리맞고 골망을 가른 순간 모두 기뻐서 쓰러졌죠."
-에이스 류승우가 3차전에 발목 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이탈했는데.
창근 "승우는 박수칠 때 떠났죠(웃음). 왕이었어요. 그 후로는 누워만 있었죠. 밥도 빨래도 우리가 다해줬어요(웃음)."
승우="애들한테 짐만 되는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애들이 내색 안하고 정말 잘해줬어요. 벤치에서 보는 내내 같이 뛰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나 말고도 광훈이 등이 있으니 걱정 안했어요. 120% 믿었어요."
-새벽까지 잠도 안자고 응원한 팬도 많았답니다.
창근 "이게 스포츠구나 생각했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사실 섭섭한 부분도 있었어요. 조금 부진했던 조별리그 1·2차전 때 악플이 많이 달렸거든요."
주훈 "제 콜롬비아 승부차기 실축에 '나호로 발사슛'란 댓글도 있었어요. 그래도 모든 게 감사했어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SNS가 화제다. 매일 얼굴보는 사이인데 SNS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
창근 "남자끼리 서로 얼굴보고 이야기하기 쑥스럽잖아요. SNS를 통해 서로 격려해줬어요. 응원해주는 팬들께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어요. 참 제가 콜롬비아전 후 SNS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글을 남기고 잠들었는데요. 일어나보니 큰 오해가 생겼어요. 절대로 누구를 겨냥해서 남긴 글 아니에요. 지우면 이상할까봐 그냥 놔뒀어요." 같은날 A대표팀 기성용이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비밀 SNS가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네티즌들은 이창근의 발언이 기성용을 겨냥한 것 아니냐고 물음표를 달았지만 사실무근이었다. 네 선수는 A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의 갈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A대표팀 선수들과 비교 자체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자신들을 낮추며 언급을 피했다.
-킥오프 전 둥글게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승우 "서로 말 많이 하려고 다퉜어요. 다들 긴장 풀려고 조잘조잘거렸죠. 창근이가 늘 '아무말도 하지마. 내가 할거야'라고 정리한 뒤 '마지막이다. 후회없이 하자'고 말해요."
창근 "(김)현이가 AFC 대회 때 드라마 대사처럼 '우승해서 월드컵 갈래, 아니면 올림픽까지 4년 기다릴래'라고 말해 다들 오글거려 죽는줄 알았어요. 한 때 김글거림(김현+오글거림)이라 불렸죠. 그래도 현이는 멋있는 친구에요(웃음)."
-선수들 사이에서 이광종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창훈 "선수들 대부분 감독님 특유의 말투를 따라할 수 있어요. 차마 흉내는 못내겠어요. 혼날까봐."
창근 "팀 분위기가 가라 앉을 때가 있었는데요. 감독님이 '커피 마실 사람~~'이라고 말해 다 빵 터졌어요. 반전의 계기가 됐죠. 좋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해도 좋게 들리잖아요. 감독님이 딱 그래요. 감독님은 밀당의 고수에요. 풀어줄 때 풀어주고, 혼낼 때 혼내요. 들었다 놨다 장난 아니세요(웃음)."
-이광종 감독이 2014년 아시안게임과 2016년 올림픽 사령탑 제의가 온다면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했다.
창근 "감독님 저희도 다 준비됐습니다."
창훈·승우·주훈 "(여행 가방을 만지며) 감독님 저희들은 이미 짐 다 챙겨놨습니다(웃음). 감독님은 그 자리 가셔도 잘할 분이세요. 함께 가고 싶어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
주훈 "(김)승준이가 터키에서 맹장염으로 귀국길에 올랐어요. 두 눈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 남기고 떠났죠. 승준이가 단체 카카오톡방에 '너무 울컥해서 눈물 흘릴까봐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형님들 3년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한국가서 응원하겠습니다'란 글을 남겨 짠했어요."
창근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선수들끼리 (권)창훈이의 생일을 몰래 준비했어요. 근데 감독님 귀에 들어가 일이 너무 커졌나 싶어서 걱정했죠. 감독님이 우리를 모은 뒤 '우리는 가족 아니냐. 여기서는 내가 아버지다. 창훈아 생일 축하하고 콜롬비아전에 골을 넣어라'고 말씀해주셨던 일이 기억나요." 권창훈은 콜롬비아전에 도움을 올리며 보답했다.
-F4에게 '팀'이란.
광훈 "하나에요. 언론에서 우리는 스타가 없다고 했는데요. 우리는 스물 한 명 모두 스타에요."
주훈 "가족이에요. 가족은 한명이 기분 안좋으면 다같이 위로해서 풀어주잖아요. 제가 콜롬비아전 승부차기 못 넣었을때 친구들이 '너 때문에 승부차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위로해주는데 뭉클했어요."
창근 "내가 가족할려고 했는데.(ㅠㅠ) 팀은 행복이에요. 늘 함께 할 수 있고, 슬픔도 다 같이 느낄 수 있어 행복해요."
네 선수는 가깝게 내년 부산 아시안게임, 3년 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흩어지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반드시 대표팀에서 다시 만나자”고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동안 깊은 정이 들었는지 서로 헤어지는 걸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에 흐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