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홈런왕(31개) 박병호(27·넥센)가 최근 4경기에서 3홈런을 몰아치며 홈런 레이스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6월15일 광주 KIA전 이후 침묵했던 최정(26·SK)이 9일 대구 삼성전에서 24일 만에 17호 아치를 그리며 박병호와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성열(29·넥센)이 16홈런에서 멈춰있는 사이, 최형우(30·삼성)가 최근 9경기에서 5홈런을 치며 15홈런으로 선두권을 위협했다.
사연을 알면 더 재밌다. 홈런왕을 노리는 네 명은 갖가지 사연으로 얽혀있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이유다.
고교 거포와 야구 천재
박병호는 성남고 시절이던 2004년 4월29일 대통령배 화순고와의 1회전에서 5·7·8회 3연타석 홈런을 쳤다. 고교야구 사상 네 번째 3연타석 홈런. 5월1일 휘문고와의 16강전 첫 타석에서, 기록의 수식어가 '최초'로 바뀌었다. 박병호는 당시 고교 최고 투수로 꼽히던 김명제(전 두산)를 상대로 1회 커다란 아치를 그렸다. 두 경기에 걸쳐 달성한 고교야구 최초의 4연타석 홈런. 서울 구단 LG·두산 스카우트의 영입전이 펼쳐졌다. 결국 두산이 투수 최대어 김명제를, LG가 거포 박병호를 1차 지명으로 차지했다. 박병호의 계약금은 3억3000만원.
같은 해 수원시 유신고에는 '야구 천재'로 불리던 소년이 있었다. 바로 최정이다. 최정은 3학년이던 2004년 26경기에서 타율 0.500·8홈런·42타점·11도루를 기록했다. 2004년 '이영민 타격상'은 최정이 수상했다. 그는 투수로도 18경기에 출장해 9승 3패 평균자책점 3.33으로 활약했다. SK는 예상대로 최정을 1차 지명했다. 최정은 계약금 3억원을 받았다.
같은 시대 고교야구를 풍미했던 둘은 서로를 치켜세운다. 박병호는 "최정은 다 잘했다. 모든 부문에서 뛰어났다"고 했다. 최정은 "박병호가 (스카우트에게)인기가 더 많았다. 확실한 장점(힘)이 있었던 타자"라고 했다. 최정의 유신고 동기동창 배영섭(27)의 답은 더 명쾌했다. 그는 "프로 스카우트들이 투수는 김명제·서동환, 타자는 박병호·최정만 보러 다녔다. 그만큼 대단했다"고 떠올렸다.
포수 마스크를 버리고
이성열은 지난 5일 목동 LG전에서 9회 포수 마스크를 썼다. 자신의 프로무대 53번째 포수 출전. 두산 소속이던 2011년 9월27일 잠실 삼성전 이후 1년 9개월 여 만이다. 포수 마스크를 쓴 이성열은 화제를 모았다. 이제 포수는 그에게 '낯선' 포지션이다.
이성열은 순천 효천고 시절 포수였다. LG는 2003년 '공수를 두루 갖춘 포수'라는 평가를 받은 이성열을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지명했다. 2006년까지 이성열은 포수로 뛰었다. 하지만 김정민(현 LG 배터리 코치), 조인성(현 SK)을 넘지 못했다. 이성열은 2007년 '공격력 향상'을 위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최형우도 2002년 2차 6라운드 전체 48순위로 삼성에 입단한 전주고 출신 포수였다. 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05시즌 종료 뒤 방출됐다.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한 그는 외야수 전향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2007년 2군 북부리그 타격 3관왕에 올랐고, 2008년 삼성에 재입단했다. 포수 마스크를 버린 최형우는 2011년 1군에서 타격 3관왕(홈런·타점·장타율)에 올랐다. 흥리롭게 최정과 박병호도 고교 때 포수로 출전한 경기가 꽤 된다.
홈런왕·트레이드, 땀과 눈물
2011년 홈런왕은 최형우다. 지난해 홈런 1위 박병호와 올 시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최형우는 입단 10년째 마침내 왕관을 썼다. 박병호도 유망주 껍질을 깨고, 8년째 홈런왕에 등극했다.
LG에서 두산으로, 다시 넥센으로 '서울팀 이적'의 역사를 쓴 이성열도 넥센에서 두 번째 시즌인 올해 파괴력을 선보이고 있다. 박병호가 넥센 이적 2년째 홈런왕에 올랐던 모습과 닮아 있다.
결국 네 명의 공통점은 '땀과 눈물'이다. 가장 평탄한 길을 걸었던 최정마저 "2005년과 2006년에는 '돌 글러브' 소리까지 들었다. 한 자리(3루)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땀을 흘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