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상은 장가를 잘 든 덕분에 고속 출세했으나 그로 인해 파멸했다. 능력과 업적에 상응하지 않는 큰 감투와 권력을 얻었으나 그것이 그의 불행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그가 본시 졸렬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하후연의 조카였던 하후상은 소싯적부터 조비와 절친했다. 조조가 조카뻘 되는 조진과 조휴를 궁중에서 함께 키웠지만 이들은 연배가 십년 가깝게 위였으므로 조비와는 살가운 친구가 아니었다. 조비는 하후상의 지략이 뛰어나다고 여겼다. 하후상은 조조의 딸과 결혼해 조비와는 처남매부지간이 됐다. 하후상은 조비가 *오관중랑장이던 시절부터 그의 측근이 됐다. 그는 아마도 후계쟁탈전에서 조비의 핵심 참모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 조비의 왕위계승과정에서 그가 사마의·진군 등과 더불어 일익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조비가 왕위를 계승하자 하후상은 권력의 핵심실세가 됐다. 조비의 즉위와 함께 전반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조조의 옛 신하들은 뒷전에 물러나고 사마의·진군·조휴·조진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막후의 핵심 실세는 하후상이었다. 맹달이 조비에게 귀순하자 하후상은 형주자사가 되어 상용 지역을 기습해 접수했다. 이때 역전의 용사 서황이 그의 부장으로 종군했다. 이 공으로 정남대장군에 임명됐다. 군사마나 참군사가 경력의 전부였던 하후상으로서는 엄청난 벼락출세였다.
조비는 하후상을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하후상이 정남대장군이 되자 조비가 그에게 임의로 벼슬을 주고 생사여탈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도 했다. 하후상의 참모로 있던 장제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한탄했을 정도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후상은 조비가 삼로군을 일으켜 오나라를 정벌할 때 강릉 방면의 군대를 총지휘하는 등 상당한 군공도 쌓았다. 그가 오래 살았더라면 위나라의 후계구도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일찍 생을 마감하게 된다. 부인인 공주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하후상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첩이 하나 있었다. 타고난 미인이었을 뿐더러 성격도 무척 좋았다. 형주에 주둔했던 하후상이 상용 서쪽 방면을 개척할 때 포로로 잡았던 원주민의 딸이었다. 하후상이 그녀를 몹시 사랑하자 공주의 시샘이 심했다. 공주는 걸핏하면 궁정에 들어가 조비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성가셔진 조비는 아주 졸렬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자객을 하나 보내 하후상의 애첩을 목 졸라 죽인 것이다. 하후상은 무척이나 슬퍼했다. 아마도 제 신세가 한심했을 것이다. 황실에 장가든 덕택에 부귀와 공명을 얻기는 했지만 사랑하는 여인 하나 지킬 능력이 없었다. 그가 얻은 지위와 권력이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깊이 상심한 하후상은 결국 발광했다. 죽은 애첩이 너무도 보고픈 나머지 무덤을 파내고 관곽을 부수고 시신을 꺼내 보기까지 했다. 하후상은 발병한 이듬해 미쳐서 죽었다.
이를 보면 하후상은 잔꾀나 부릴 줄 알았지 큰 인물은 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를 발탁한 조비 역시 큰 그릇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요즘도 이런 인물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물들을 중용한다면 나라의 대사를 망칠 것이 분명하다.
[미화된 영웅] 조씨와 하후씨의 혼인관계
하후상(A.D ?~225년)은 하후연의 조카이다. 하후연은 조조와 사촌인 하후돈의 집안 동생뻘이었으니 조조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적어도 6촌이나 8촌은 됐을 것이다. 그런데 하후상은 조조의 딸에게 장가들 수 있었다. 조조는 전통적 사족가문 출신이 아니다보니 혼인관계에 있어서도 유교적 법도를 따르지 않았다. 자신과 뿌리가 같은 하후씨와는 두루 인척관계를 맺었다.
조조의 부친 조숭은 원래 하후씨였으나 어려서 환관이었던 조등에게 입양되었으므로 조씨로 성을 갈았다. 하후돈의 숙부가 조숭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오나라 사람들이 썼다는 '조만전'이나 '곽반세어'에 나오는 내용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나 사실일 것이다. 진수가 '삼국지'를 엮으면서 여러 하후씨와 조씨 친척들을 '제하후조전'이라는 열전 한편에 묶어 수록한 것을 보면 그가 이들을 모두 한집안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조에게는 하후돈을 비롯한 하후씨들이 조인이나 조홍 등과 같은 조씨 친척들보다 혈연적으로는 더 가까웠다는 얘기다. 조인과 조홍은 조부가 조조와 다른 것으로 보아 최소한 6촌 이상의 친척이었고 실제로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조는 자신의 딸 청하공주를 하후돈의 둘째 아들 하후무와 결혼시켰다. 하후연은 조조와 동서지간이었다. 하후연의 처가 조조 부인의 여동생이었다. 아마 변씨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하후연의 맏아들 하후형을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시켰다. 하후상 역시 조조의 사위가 됐다. 비록 동향 출신에다가 공신들인 하후씨를 우대하기 위한 조치였겠지만 자신과 원래 성씨가 같은 집안사람들과 자녀들을 서로 통혼시켰으니 유교적 예법으로 보면 엉망진창인 혼인관계였다.
또 그 결과가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하후상의 사례 이외에도 하후무와 같이 부인과 사이가 나빠 고생한 경우도 있었다. 하후무는 조조의 사위였고 조비와도 처남매부지간일뿐더러 친구 관계였으므로 매우 우대를 받았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하후무는 안서장군이 되어 관중 방어를 책임지게 됐다. 하후무는 한 지역의 방어를 책임지기에는데 부족한 인물이었다. 그는 무략이 없었고 재산을 늘리는 일을 좋아했다. 그가 관중에 있을 때 많은 첩과 기녀들을 거느렸다. 이로 인해 부인인 청하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청하공주가 새로 황제가 된 조예에게 하후무의 죄상을 고발하는 바람에 그는 처형당할 뻔하기도 했다.
[거짓말 벗겨보기] 하후상이 별 볼일 없는 장수라고?
'삼국지연의'에서 하후상은 한중에서 황충에게 천탕산이라는 가공의 산을 빼앗기고 심지어는 포로로 잡히기도 하는 하잘 것 없는 말장으로 등장한다. 하후상이 하후돈의 조카라는 엉터리 해설과 함께. 하후상은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장수가 아니라 조비 시절 실세 중의 실세였다. 조조와 유비가 한중에서 싸울 때 하후상은 조창을 수행해 대군을 정벌 중이었으므로 한중쟁탈전에는 참전조차 하지 않았다. 하후무도 역시 제갈량의 1차 북벌 시 포로로 잡히는 등 망신을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