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고'와 '레드2'가 해외 흥행에선 '대박', 자국에선 '실패'란 독특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두 편 모두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반면 자국에선 흥행에 실패해 그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 '미스터 고'는 17일 개봉후 국내에선 29일까지 겨우 100만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넘기는데 그쳤다. 하지만, 같은 기간동안 중국에서는 1억위안(약 181억원)을 벌어들이며 폭발적인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병헌이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 '레드:더 레전드'('레드2')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18일 개봉후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며 누적관객수 232만 6092명을 모았다. 그러나, 막상 자국인 미국 내에서는 박스오피스 5위권에서도 밀려난 상태다.
두 작품 모두 자국에서 기대작으로 꼽혔던 영화. 그럼에도 자국에서 외면받고 해외에서만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미스터 고' 국내 흥행 참패, 중국에선 '최고' 극찬
'미스터 고'의 국내 흥행부진은 사실 아무도 예상치못한 결과다. 첫 공개후 관계자들과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심지어 '스크린을 독차지해 독과점 논란을 불러오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스크린수는 줄어들었고 관객수도 늘지 않았다. 김용화 감독의 전작 '국가대표'와 '미녀는 괴로워'가 첫주에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을 보이다 2주차 주말부터 상승세를 탔던바, 이번에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되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현재 '미스터 고'의 스크린수는 633개.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대부분의 극장에서 교차상영을 시작해 좋은 시간대를 빼앗긴 상태다.
자국에선 외면받고 있지만 중국에선 호사를 누리고 있다. 중국 개봉 첫날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서더니 12일만에 18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번주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어 흥행가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중국시장에 진출한 한국영화중 가장 우수한 성적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 역시 칭찬일색. 중국 관객들은 '특수효과 뿐 아니라 동물과 사람의 교감이 감동적이다' '80%가 한국말인데도 재미있다' 등의 반응을 SNS와 영화 관련 게시판에 올리며 열광하고 있다.
중국에 이어 태국에서도 현지 300여개 극장중 100개관에서 상영되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 와이드릴리즈될 예정이라 만만찮은 수익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미스터 고'로 CG기술을 인정받은 김용화 감독의 덱스터 스튜디오에도 아시아 각국 영화인들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레드2', 자국 관객 외면 속에 한국에서만 특수
'레드2'의 상황도 아이러니하다. 브루스 윌리스·안소니 홉킨스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톱배우들을 내세웠는데도 막상 미국 내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을 얻고 있다. 현지에서 19일 개봉한 이 영화는 출발부터 박스오피스 5위에서 시작해 현재 6위로 밀려난 상태다. 28일까지 누적 매출액은 3500만 달러(약 390억원). 한국영화 수준으로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흥행수익을 거둬들인 셈이다. 그러나, 제작비가 총 8400만 달러(약 940억원)나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이없는 성적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한국영화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게 요즘 국내 관객들의 성향. 이 때문에 '미스터 고'와 맞붙어 크게 패할거라던 예상이 나왔지만 의외로 다크호스가 됐다. 개봉 3주차에 들어서면서 타 개봉작에 약 70~80여개 스크린을 내놨다. 그럼에도 상영회수는 큰 변동없이 일일 9000회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 영화를 찾는 관객이 많아 극장측에서 상영회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더 울버린'이 25일 개봉했는데도 '레드2'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성적을 보이고 있다.
▶'미스터 고' 스타부재 등 문제, '레드2'는 늙은 액션스타 내세운게 패인
'미스터 고'가 국내에서 참패한 이유는 세 가지 이유로 분석이 가능하다. 첫번째는 열악한 국내 3D 상영관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최초 풀 3D로 제작해 '보는 맛'이 다른 영화로 완성된건 사실이지만 개봉 당시 3D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대부분의 스크린에서 2D로 상영됐다. 관객 입장에선 '미스터 고'의 '참 재미'를 느끼지 못한 셈이다. 두번째는 스타의 부재다. '미스터 고' 제작진은 애초부터 CG고릴라 링링이 가장 주목도 높은 주인공이 될거란 기대를 내걸었다. 이 때문에 주연배우는 주연급 조연을 주로 맡아온 연기파 성동일과 중국 아역배우 서교를 캐스팅했다. 연기호흡은 좋았지만 티켓파워는 아쉬웠다.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이 예상과 달리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 상태에서 눈길을 끌만한 스타까지 없어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세번째로, 아시아 공략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도 문제였다. 처음부터 해외를 노린 탓에 국내 관객이 좋아했던 김용화 감독 특유의 해학미가 사라졌다는 분석.
영화계 한 관계자는 "김용화 감독이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라며 "그럼에도 '미스터 고'가 아시아 시장에 한국영화를 널리 알린 공신이란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드2'의 미국시장 패인은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기획'이다. 브루스 윌리스와 존 말코비치 등 이젠 '할배'가 된 왕년의 스타들을 모아 '추억의 액션'을 보여줬지만 주요 티켓구매층의 호기심을 자극하진 못했다. 당시의 추억을 가진 미국 중년 관객들을 끌어들이기에 좋은 소재인데도 먹혀들지 않았다. 앞서 아놀드슈워제네거의 주연 복귀작으로 화제가 됐던 김지운 감독 연출작 '라스트 스탠드' 역시 미국에서 참패했다. 더 이상 늙은 액션스타들을 내세운 영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이병헌의 할리우드 출연작으로 어필하면서 관객몰이 중이다. 사실 이병헌이 없었다면 그저 '다운로드용 영화'로 전락할수도 있었지만 '지.아이.조' 시리즈에 이어 한층 업그레이드된 이병헌의 할리우드 연기가 기대를 모으며 국내 관객의 표심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