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초능력자들이 브라운관을 점령중이다. 마음을 읽는 초능력 소년부터 귀신보는 형사, 초인적인 암기력과 공간지각 능력을 지닌 의사까지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처음 포문을 연 것은 6월 종영한 SBS 주말극 '출생의 비밀'. 주인공 성유리(정이현)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소유자로 등장했다. 이어 1일 종영한 SBS 수목극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소년 이종석(박수하)이 화제를 모았다. 각각 '기억상실' '법정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5일 첫방송된 KBS 2TV 월화극 '굿 닥터'에서는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의사까지 등장했다.
또한 여름 시즌을 맞아 '귀신보는 능력'을 소재로 한 세 편의 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한다. 기존 납량물에 초능력 소재를 더해 화제몰이를 노린다. 8일 첫방송되는 SBS 새 수목극 '주군의 태양'과 지난달 29일 첫방송된 케이블채널 tvN 월화극 '후아유', 10월 방송 예정인 OCN '귀신 보는 형사-처용'까지. '주군의 태양'은 귀신보는 여자 공효진(태공실)과 쇼핑몰 사장 소지섭(주중원)의 로맨스를, '후아유'와 '처용'은 각각 귀신보는 여자 형사 소이현(양시온)과 남자 형사 오지호(윤처용)을 내세웠다. 왜 브라운관 속 주인공들은 갑자기 초능력을 갖추고 등장한걸까.
▶작년에는 '타임슬립', 올해는 '초능력'
'초능력' 소재는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타임슬립'(Time-Slip, 시간여행)의 대체물이라 할 만하다. 지난 해에는 SBS 수목극 '옥탑방 왕세자'부터 tvN 수목극 '인현왕후의 남자' MBC 주말극 '닥터진' SBS '신의'까지, 조선·고려시대와 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드라마가 쏟아졌다. 이같은 '타임슬립' 유행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향'을 소재로 한 올해의 수작인 tvN 월화극 '나인' 까지 이어졌다. 이후 '출생의 비밀'부터 '주군의 태양'까지 각종 초능력 소재가 바톤을 이어받은 모양새다.
이같은 초능력 소재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초인' 캐릭터의 새로운 변형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는 예전부터 '초인'을 사랑해 왔다"며 "현재 드라마의 초능력자들은 한국의 홍길동이나 미국의 슈퍼맨 등, 먼 옛날부터 존재해 온 '초인'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전문직 드라마의 등장과 함께, 의학·법정·추리극 등 소재별로 맞춤형 초인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여성 시청자들을 노린 멜로물의 관점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초능력을 갖춘 남자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경우, 이런 초능력자와 일반인 여성과의 멜로 라인에서 '특별한 존재와의 사랑'이라는 코드가 읽힌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트와일라잇'이나 '웜바디스' 등에서는 뱀파이어나 좀비 등과의 사랑이 주제다. 이처럼 관객은 특이한 존재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새로운 채널이 급속도로 증가한 방송환경의 변화도 이같은 특이 소재의 등장에 한 몫 했다. 배경수 KBS 드라마국 CP는 "케이블과 종편 등 비지상파 채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시대가 열렸다"며 "비지상파에서 먼저 틈새 시장을 노리면서 실험적 드라마를 들고 나왔다. 지상파도 이에 자극을 받아 다양한 소재를 선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가족물, 사극, 치정극 등 공식화된 드라마들 간의 차별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하다 보니, '타임슬립' '초능력자' 등 신선한 소재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