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왠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헤어진 옛 연인도 생각나고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절로 그리움이 탄식이 되곤 한다. 특히 부친이신 차일혁 경무관님을 기념하는 행사가 유난히 잦았던 2013년에는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지난 9월 1일에는 영남 교방청 춤의 대가인 박경랑 선생이 차 경무관을 위한 추모공연 '영웅찬가'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올렸다. 국가 보훈처가 대한민국을 수호한 참전 용사 중 9월의 전쟁영웅으로 아버지를 선정한 것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공연 중 차 경무관의 사진과 말씀, 좋아하시던 노래와 춤 속에 용선을 타고 승천하는 장면을 보면서 복받치는 그리움을 참기 힘들었다. 내 나이 열한 살, 아버지를 여읜 뒤부터는 단 한 순간도 아버지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흥겨운 농악의 뒤풀이가 없었다면 그 응어리가 녹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55년의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그 동안 이른 죽음으로 묻혀 있었던 아버지의 혁혁한 공과 정신, 나라와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자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 결과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아버지의 업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08년에는 빨치산 토벌작전 중에 지리산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상부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천년사찰인 화엄사를 지켜낸 공으로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으셨고, 2012년에는 총경에서 경무관으로 계급이 추서되셨으며 누락됐던 두 개의 무공훈장도 되찾았다. 2013년 1월에는 국가보훈처 선정 ‘이 달의 6.25전쟁 영웅’, 4월에는 전쟁기념사업회에서 경찰로는 드믈게 ‘호국의 인물’로 선정되셨다.
방송가에서도 아버님을 재평가하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천년고찰 화엄사를 지켜낸 아버지의 행적을 기록한 KBS 역사스페셜 '포화 속에서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2011)', 빨치산 토벌대장 시절 빨치산에게 포위당한 칠보발전소를 극적으로 탈환한 과정을 담은 '또 하나의 전쟁(2012)'편, 그리고 지난 3.1절에는 일본경찰 사이가 시치로를 저격한 아나키스트 차일혁을 그린 '누가 사이가 시치로를 쏘았나'편까지 아버지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을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많은 공감을 나눌 수 있었다.
특히 지난 8월 21일 백중날에는 화엄사 경내에 차일혁 공덕비가 다시 세워지는 뜻 깊은 행사도 있었다. 화엄사 공덕비는 지난 1998년 6월 20일에 총무원 월주스님과 지리산 내 유서 깊은 사찰의 주지스님들께서 마음을 합쳐 세워주신 바가 있었지만 불사 문제로 2006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안타깝게 훼손되어 2013년 재조성하게 됐다. 이번 공덕비 행사를 통해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던 문화 사랑의 메시지를 천년고찰 화엄사에서 전달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깊은 날이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2013년과도 이별할 때가 다가왔다. 지난 55년 동안 아버지를 위해 전국방방곡곡을 뛰어다녔던 나와도 당분간 이별할까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를 돌려보내드리려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너무나 보고 싶어 했던, 간절히 그리워했던 소년도 55년의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내 길을 걸어야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문득 내가 태어난 전라북도 전주의 태평동이 생각난다. 태평동의 원래 지명은 상생리였다. 내가 다니던 전주국민학교도 옛날 상생국민학교였다. 서로가 상생하는 마을, 서로가 상생하는 세계. 그런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소년의 못 다 이룬 꿈을 위해 아버지와 이별할 수밖에 없는 아들의 선택을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