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잘 하는 선수'와 '자기를 희생해 주변을 좋게 만드는 선수가 있다. 전자는 손흥민이다." (런던올림픽 앞두고 한 지인에게)
"주변에서 잘 한다고 하기에 뽑았다. 기량을 지켜보겠다." (아이티전을 앞두고)
"손흥민은 팀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본다." (크로아티아전을 마치고)
손흥민(21·레버쿠젠)을 바라보는 홍명보(44) 대표팀 감독의 시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제 홍 감독은 손흥민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손흥민은 아이티전(6일)과 크로아티아전(10일)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됐다. 아이티전에서 팀의 선제골과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킨 손흥민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위인 크로아티아를 상대로도 특유의 개인기를 맘껏 선보였다. 특히 후반 초반 왼발로 볼을 반대로 꺾는 절묘한 볼 트래핑으로 수비수 두 명을 순식간에 제친 장면은 압권이었다. 소속팀 레버쿠젠에서처럼 왼쪽 측면을 맡은 손흥민은 이청용(볼턴)과 더불어 대표팀의 든든한 양 날개를 구축했다.
홍 감독은 그동안 손흥민의 기량을 판단하는데 신중했다.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 돌파와 슈팅력은 뛰어나지만 동료와 연계 플레이, 수비 가담에서 약점을 보였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아이티·크로아티아전을 앞둔 훈련에서도 홍 감독의 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대표팀 훈련에서 손흥민은 이근호(상주), 고요한(서울) 등 국내파와 주로 호흡을 맞췄다. 손흥민 입장에서는 구자철(볼프스부르크)·김보경(카디프시티) 등 유럽파와 함께 뛰는 것에 비해 낯선 조합에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야 했다.
손흥민은 겸손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며 가치를 스스로 드러냈다. 손흥민을 대하는 홍 감독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손흥민의 훈련 모습을 지켜본 홍 감독은 "의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보인다"며 손흥민을 인정했다. 그리고 실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아이티전 전반에는 중원에서 수비수 한 명을 제친 후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시원한 선제골을 넣었다. 후반에는 이청용·이근호와의 콤비 플레이를 쐐기골로 연결시켰다.
크로아티아전에서도 손흥민은 번뜩이는 개인기로 대표팀 공격에 활로를 불어넣었다. 홍 감독은 크로아티아전을 마친 후 손흥민에 대해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 어떤 점이 다른지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손흥민은 처음 합류해서 팀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흥민에게 열광하는 바깥의 시선과는 다르게 손흥민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홍 감독은 공적인 자리에서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손흥민에게 다소 부정적이던 홍 감독의 시선이 돌아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손흥민은 실력으로 의혹을 걷어내고 자기 자리를 꿰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