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장수정(18·양명여고)과 리듬체조 천송이(16·세종고). 이들은 대한민국 스포츠 '희망의 아이콘'이다.
이유가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 선수들과는 DNA 자체가 다르다. 과거 한국 스포츠가 인프라와 체격의 핸디캡을 딛고 악바리 정신으로 세계무대에 도전했다면, 이들은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지함과 열정은 선배들에 뒤지지 않는다. 이들이 '비인기 종목'이라 불리는 각자의 종목을 사랑하고, 또 열심히 훈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즐거워서"다.
일간스포츠가 창간 44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스포츠의 '희망'들을 만나봤다. 이들에게 가장 먼저 '헝그리 정신'이라는 화두를 던졌더니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천송이는 "헝그리 정신? 그게 뭔가요? 운동은 잘 먹고 힘내서 하는 거에요"라며 웃었다.
"부(富)에 연연하지 않아요"
장수정과 천송이는 자신의 종목에서 가장 뛰어난 유망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었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첫째도 즐거움, 둘째도 즐거움, 셋째도 즐거움이었다.
7살에 처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장수정은 2007년 미국 프린스컵 12세부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에디허 국제 주니어대회 12세부 4강, 오렌지보울 12세부 여자단식 준우승을 따내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현재 프로 테니스단을 운영하는 삼성증권 주니어 후원 선수로 발탁돼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내 유일의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인 KDB코리아오픈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8강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세계랭킹도 540위에서 333위로 껑충 뛰면서 한국 여자 랭킹 1위에 올랐다.
거침없는 상승세의 배경에는 꿈이 있었다. 장수정은 "하루에 7시간이나 훈련하지만 크게 힘들지 않다"며 "나는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다. 꿈이 있으면 힘든 것도 모른다"며 밝게 웃었다.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26·러시아)는 실력과 미모를 겸비해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여자 스포츠 스타가 됐다. 세계랭킹 3위인 샤라포바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2900만 달러(약 325억 원)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장수정의 꿈은 샤라포바처럼 부와 명성을 얻는 게 아니었다. 그는 "테니스가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부모님께 떼를 써서 시작했다. 제일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은 소망이 크다"며 "부모님은 너무 부(富)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신다. 돈보다는 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태어나도 운동....즐거우니까"
천송이는 '헝그리 정신'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다. 그는 "헝그리 정신이 뭐에요?"라고 해맑게 되물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악바리로 훈련해 승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고개를 갸웃했다. 천송이는 "운동은 잘 먹고 힘내서 하는 거다"라며 "요즘에는 운동으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선수는 별로 없다"고 했다. 오히려 "재미가 없으면 운동을 못한다. 나도 발레, 성악, 수영 등 여러가지를 해봤는데 리듬체조가 제일 즐거워서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천송이는 8살에 리듬체조를 시작해 12살에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됐다. 주니어 국내 대회를 휩쓸었고, 지난 4월 이탈리아 페사로 월드컵에서 시니어로 데뷔해 35위를 기록했다. 기량이 쑥쑥 늘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다크호스로 꼽힌다.
또 예전에는 금메달만 따면 주목받았지만 요즘에는 실력에 외모도 예뻐야 한다. '피겨여왕' 김연아(23)와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19·연세대)는 뛰어난 실력 외에 매력적인 외모로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장수정도 이번 KDB코리아오픈에서 깜찍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로 화제가 됐다. 그의 8강전에는 추석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5000여명의 관중이 찾아왔고, 첫 사인회에도 팬들이 벌떼처럼 몰렸다. 소녀티가 물씬 나는 천송이는 귀여운 외모로 사랑받고 있다. 장수정은 "예쁘게 봐줘서 너무 감사하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고 기뻐했다.
그렇지만 '제2의 김연아' '제2의 손연재'로 불리기는 꺼려했다. 김연아와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인 천송이는 "처음에는 그런 수식어가 굉장히 영광스러웠다. 하지만 어느새 내 이름은 아무도 몰라주더라. 그게 조금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장수정도 "김연아, 손연재 같은 유명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제2의 장수정'으로 수식어를 바꿔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테니스와 리듬체조를 할 건가?"라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는 대답이 나왔다. 천송이는 "그만큼 리듬체조가 너무 즐겁다"고 했고, 장수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 생에도 또 테니스를 하겠다"고 했다. 두 소녀에게 테니스와 리듬체조는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