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26)은 또래 여성배우들 가운데 연기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는 평을 듣는다. MBC '동이'(10)에서 인현왕후 역을 맡아 단아한 매력을 뽐내던 그는 돌연 시트콤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12)'에서 허당 캐릭터를 연기했다. 청초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몸개그를 하며 망가지는 모습은 꽤 신선했다. 최근 종영한 MBC 수목극 '투윅스'에서는 미혼모 서인혜 역에 도전했다. 미혼모 캐릭터는 이미지가 고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혼한 여배우들 조차 꺼리지만 그는 달랐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소현경 작가를 비롯해 주변에서 "정말 미혼모 캐릭터를 해도 괜찮겠냐"고 걱정할 때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자신감이 넘쳤다.
드라마를 열고보니 주변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드라마 종영 후 대중들은 박하선이 미혼모 역을 했다는 사실 보다는 그의 물오른 연기에 주목했다. 극 중 백혈병에 걸린 딸 앞에선 다정다감한 친구 같은 엄마 모습을 연기하다가, 딸의 아빠이자 전 남자친구인 이준기의 살인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동분서주 할 땐 임팩트 있는 감정연기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드라마 종영 후 만난 박하선은 "경험이 부족해서 나이가 어려서 연기를 못 했다는 말을 듣는 걸 제일 싫어한다. 이번에도 그런 말을 듣지 않으려고 시청자들이 지적한 부분을 고치고 보완하면서 연기했다.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와 작품을 만난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미혼모 캐릭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혼모 역을 하면 그 이후에도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온다며 매니저들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난 아니었다. 잘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 공효진·심은하·손예진 선배님도 각각 드라마 '고맙습니다'·'청춘의 덫'·'연애시대' 등 20대 중반의 나이에 엄마 혹은 유부녀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있다. 20대 중반에 한번쯤 도전해보면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할 때 가장 애먹은 부분은.
"파트너와 상의를 하기 보다는 혼자 고민하고 연구해야하는 부분이 많아 힘들었다. 준기 오빠와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이 많았다. 파트너가 없이 상대방의 감정을 상상해서 연기해야해서 어려웠다. 전화통화 장면을 찍기 위해 일부러 준기오빠 촬영장에 가서 연기를 지켜봤다. 그래야 그 톤에 맞춰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작가에게 전화해서 많이 울었다던데.
"더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돼 작가님께 전화했다. '최선을 다 하는데 연기가 잘 안된다.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면서 순간 울컥해서 울었다. 작가님이 사실 칭찬을 잘 안하는 편인데 '대본 리딩 때 보다 잘하고 있고, 대본을 많이 본 티가 연기에서 묻어난다. 열심히 하는 거 다 안다'고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대개 미니시리즈는 대본이 늦어 생방송 촬영처럼 진행되는데 '투윅스'는 그렇지 않았다고 들었다.
"보통 사흘 꼬박 촬영을 하고 하루 정도 쉴 때가 많은데 이번엔 일주일에 3일만 찍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캐릭터에 익숙해질만하면 쉬어서 다시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촬영에 들어가면 대본 외우느라 시놉시스를 다시 볼 일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촬영이 없는 동안 서인혜의 감정을 유지하려고 시놉시스를 여러번 다시 봤다."
-시청률은 기대보다 낮았다. 10% 안팎이었는데.
"작품을 통해 하나만 얻으면 성공한 게 아닐까. 작품성과 시청률 모두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엔 명작을 만나서 행복했다. 대본을 보면 잡생각이 안들어서 좋았다. 그 만큼 소현경 작가님의 글에 푹 빠져들었다."
-시청자 반응을 일일이 다 체크한다던데.
"인신공격성 댓글만 아니면 시청자들의 지적을 참고하려고 노력한다. 극 초반 발음이 뭉개지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또 '하이킥' 때 표정이 보인다는 반응이 있어서 다시 '하이킥'을 보면서 연구를 했다. 성형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얼굴 근육이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그래서 표정이 좀 과해보였던 것 같다. 근육의 움직임을 자제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캐릭터와 작품을 분석한 리포트를 작성해 제작진에 제출하는 걸로 유명하다.
"신인 때부터 리포트를 만들었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떨어져서 뭔가 차별점이 있어야한다고 궁리한 끝에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안병기 감독님과 영화 '아파트'를 할 때는 리포트를 100장 썼다. 감독님이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영화사로 출근을 하라고 하셨다. 두 달 동안 출근하면서 일주일에 하나씩 리포트를 제출했다. 그런 모습을 좋게 보시고 결국 캐스팅해주셨다. 그 이후에도 되든 안되든 캐릭터를 연구한 리포트를 낸다."
-여전히 롤모델이 하지원인가.
"대단한 분인 것 같다. 사실 어리고 젊은 여배우들은 예쁘고 청순한 캐릭터를 하길 원하는 데 그런 틀을 깬 게 하지원 선배님이신 것 같다. 나 역시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 '동이'를 한 뒤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도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번에 '투윅스'에서 어두운 캐릭터를 했으니 다음 작품에선 좀 밝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중성적인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
-남은 하반기 계획은.
"아직 차기작을 고르지 않아서 일단 좀 쉴 것 같긴 하다. 도자기를 만든는 걸 좋아하는데 쉬면서 다시 도자기를 만들 생각이다. 배우는 쉴 때도 잘 쉬어야 다음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쉴 때 조급한 생각이 드는 편인데 이번에는 알차게 푹 쉬어보고 싶다. 하지만 일 욕심이 많아서 오래 쉬진 않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