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르겠으나 예전 시골 동네 어느 작은 부락과 꽤 떨어진 고등학교에 같은 현수막이 붙는 날이 있다. ‘자랑스러운 아무개 사법시험 합격’이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농사라고는 남의 논 몇 마지기 빌려 소작하는 집 아들이 곧 판검사가 된다고 소문이 나는 순간, 지역 유지고 면장이고 다 찾아와 인사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과거 시험에 급제한 시절 이후 계속되어 온 분위기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법시험은 가난하고 마땅한 빽 없던 시절에 가장 정직하게 공부 실력만으로 승부를 봐서 신분상승이 주식 대박 터지듯이 올라가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요즘도 드라마에 부잣집에는 검사 사위가 한명씩 있다. 그 사위는 재벌 장인의 민원을 가뿐하게 해결해 주는 것으로 나온다. 검사들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영감님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검사들은 국민들이 어찌 바라볼까? 좋은 일은 뉴스에 잘 나오기나 했겠나.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경찰과 검사가 함께 똘똘 말아서 감옥살이 하다가 몇 년 만에 나온 순박한 청년의 억울한 이야기, 겁나 높은 고위직이 되었는데 청문회에서 털다보니 가족문제와 부동산·접대 먼지가 덩어리로 나와서 그만두게 된 소식, 사법연수원 합격 후 애인 버린 사연, 업자에게 주기적으로 뭘 그리도 받아 드시다가 체해서 자신이 호송차 차게 된 이의 이야기까지…. 어느 직업이나 있는 문제적 인간이 그 사회 안에도 있기 마련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검사에게 바라는 올바름의 기대치는 어지간한 면도날보다 날카롭다.
어느 단체에서 검찰의 수사를 두고 발표 할 때 온갖 불만을 다 토로하다가도 자신들의 억울함은 결국 검찰에 고발하게 되고 원하는 것에 맞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정의가 바로 섰다고 급칭찬을 하기도 한다.
검사가 서초동에 서른 평 아파트 마련하려면 몇 년이 걸릴까? 현수막 걸리고 나서 부모님 챙기고 아이들 학원비 대고 어쩌고 하면 겁나 오래 걸릴 것이다(개그맨이 더 빠른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변호사 개업하지 왜 고생할까? 사실 난 검사들이 어느 갈등에 부딪혀 옷 벗는다는 뉴스를 보면 뭐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는다. 뭐 직장을 그만두면 앞으로 막막할 텐데 뭐 먹고 살려고 저러나 싶은 그런 애절함은 안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문제를 끝까지 치열하게 싸우다 마침표 찍고 그만두지 싶은 마음이다. 물론 검사는 개인과 조직의 명예를 중시하기에 가장 큰 아픔이겠지만 말이다.
항상 검찰의 개혁을 두고 정권이 바뀌는 시기 전후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뭐가 바뀐 것인지는 국민들이 잘 모르게 넘어왔다. 그러다 최근 검찰은 대검 중수부 폐지라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이번에 국정원 관련 사건을 통해 큰 바람에 휩싸이게 된다. 그 바람은 거세긴 거세다. 전 국민이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듯이 손바닥을 지지하는 이가 있고 손등을 지지하는 이가 극명한 때라 입장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검찰의 입장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검사는 검사답게 살 때 가장 멋진 것일 것이고 멋진 아빠고 남편일 것이다. 고향의 현수막이 동네 사람 장터 가서 광 팔라고 걸어놓은 것이 아닐 것이다. 국감에 등장한 두 명의 검사가 다른 입장을 표명하며 갈등 상황이 외부에 나가는 것이 몹시 불편하겠지만 이 또한 검찰이 크게 나아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오히려 성벽 안에서 소곤거리는 것보다 낫다, 지금의 상황은 여야의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당의 편 야당의 편인 검찰은 있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 여론편일 필요도 없다.
검찰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인사권을 정리하고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봐야 결국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보여주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것을 국민들은 보고 있고 지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