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名家). 사전적 의미로 이름난 집을 뜻한다. 명가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역사와 전통이 있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업적을 내야 명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
2013시즌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삼성과 두산은 프로야구의 명가이다. 두 구단은 롯데와 함께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올 시즌까지 32년째 모기업이 바뀌지 않은 채 운영돼왔다. 두산은 1999시즌 OB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구단명이 바뀌었지만 모기업은 같다.
삼성은 지난해까지 31년 동안 여섯 차례 챔피언(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 포함)에 올랐다. 우승 횟수가 10번의 KIA(해태 포함) 다음으로 많다. 올 시즌 3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두산은 원년을 포함해 세 차례 정상을 차지했다. 이번에 삼성을 꺾으면 4회 우승으로 현존 팀 단독 3위에 오르게 된다.
두 팀은 포스트시즌 단골이다. 삼성이 리그 최다인 26번 가을 야구를 했고, 두산은 17번으로 KIA와 함께 두 번째로 많다. 두 팀이 동시에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해는 1983, 94, 96년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양팀은 일곱 차례 우승 길목에서 만났다. 두 팀이 치른 36경기는 포스트시즌 최다 맞대결이다. 한국시리즈 만남만 이번이 4번째로 해태-삼성, 해태-빙그레, 삼성-SK(이상 3번)를 넘어 최다 신기록을 세웠다. 결과는 막상막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선 두산이 두 번, 삼성이 한 번 승리했지만, 시리즈별로는 삼성이 네 번, 두산이 세 번 이겼다. 경기 승패로도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통산 18승1무17패로 삼성이 딱 한 발 앞서 있다. 가을 라이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두 팀의 우승 다툼은 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OB가 삼성을 4승1무1패로 누르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OB 김유동이 7차전에서 때린 만루 홈런은 아직도 TV에 자주 나오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두산은 해태(1986, 87, 93년) 다음으로 삼성의 우승을 많이 가로막았다. 그 중 두 번째 맞대결이었던 2001년 한국시리즈는 삼성에 떠올리기 싫은 악몽의 시리즈, 두산에는 미러클이라는 애칭을 붙여준 기적의 시리즈로 남아 있다. 삼성은 당시 정규시즌 1위를 하고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친 3위 두산에 2승4패로 밀려 우승을 내줬다. 결국 1년 뒤에야 LG를 꺾고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한을 풀었다. 삼성도 빚을 갚았다.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4연승으로 우승을 달성했다.
포스트시즌 라이벌답게 두 팀의 경기는 매번 불꽃이 튀었다. 36경기 중 25경기가 3점 차 이내 승부였다. 특히 가장 최근 맞대결인 2010년 플레이오프는 5경기 모두 1점 차 승부 끝에 삼성이 3승2패로 이겼다.
프로야구의 가을을 책임졌던 두 팀이 2013년 다시 만났다. 삼성은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해 왕조 건설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각오다. 2001년 이후 우승이 없는 두산은 4위 팀으로는 최초 우승을 노린다. 이기는 팀은 명가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