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쇼퍼백 모양의 박물관 건물. <사진설명> 쇼퍼백 모양의 박물관 건물. 사진설명>
1939년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가스공격에 대비한 영국 정부는 전 국민에게 방독면을 배포했다. 영국 국민들은 카드보드지로 된 방독면 상자를 어깨에 매고 다녀야 했다. 영국 여자들은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제조업자들은 여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패셔너블한 가죽 방독면 핸드백을 내놓았다. 목숨이 위태로울 지언정 아름답지 않은 핸드백은 걸칠 수 없다는 여자들의 심리가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시몬느 핸드백박물관'은 핸드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중세 귀족 여자들의 지갑부터 최신 명품 핸드백까지 300여 점의 희귀 아이템을 갖춰 즐거운 시간여행을 유도한다. 지난해 여름 개관한 세계 최초의 핸드백박물관이기도 하다.
가로수길의 쇼퍼백 모양 건물
노란 은행나무 뒤편에 자리한 지상 5층, 지하 4층의 박물관 건물은 전체가 유리 쇼퍼백 모양으로 디자인돼 눈길을 사로잡는다. 외국인 관객들이 보고 즐길 만한 한류 콘텐트가 부족한 가로수길에선 빼놓을 수 없는 문화 거점이다. 유럽의 다국적 핸드백 전문가와 수집가들이 명품 핸드백 제작사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과의 인연으로 뭉쳐 설립한 만큼 볼거리가 알차다.
이 박물관이 보유한 최고가 명품은 1998년 프랑스 에르메스가 제조한 악어가죽 핸드백이다. 가격은 1억원. 악어가죽 원피는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국내에서 거래되는 웬만한 악어가죽 핸드백은 1000만원을 호가한다. 영국 유명 배우 겸 가수 제인 버킨의 주말용 백으로 에르메스가 제작했다는 프리미엄이 붙어 '시몬느 핸드백박물관'이 보유한 중세·근현대 수집품을 뛰어넘는 가격을 받게 됐다.
<사진설명>한 관람객이 `시몬느 핸드백박물관` 3층에서 각양각색의 핸드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설명> 한 관람객이 `시몬느 핸드백박물관` 3층에서 각양각색의 핸드백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설명>
헨리8세가 왕위를 버리면서 결혼한 미국의 매력녀 윌리스 심슨이 실제로 들고 다니던 화장품 케이스(루이 비통 제품번호 876026·1969년)도 만날 수 있다. 여행용 가방의 기능이 포함된 직사각형 케이스의 측면엔 'THE DUCHESS OF WINDSOR'(윈저성의 공작부인)이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19세기 말 귀족들의 여행용 가방을 만들면서 세계적 명품 브랜드가 된 루이 비통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이는 것 같은 화장품 케이스다.
<사진설명>`시몬느 핸드백박물관`이 보유한 최고가(1억원) 에르메스 핸드백. <사진설명> `시몬느 핸드백박물관`이 보유한 최고가(1억원) 에르메스 핸드백. 사진설명>
전화가 걸리는 달라스 핸드백까지
197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일명 '달라스 핸드백'은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빨간 악어가죽으로 만든 이 전화 핸드백에는 전화칩이 들어있어 소켓에 플러그를 꼽으면 전화가 걸렸다. 핸드백 전면은 전화 다이얼과 12개의 공중전화 버튼으로 디자인돼 어떤 명품과 함께 전시되어도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다.
핸드백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몬느 핸드백박물관' 정다운 큐레이터는 "핸드백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여자의 사치품이었다. 편지지갑·작은 동전 지갑이 복주머니·핸드백으로 발전했다"면서 "핸드백 재질로 가죽이 처음 사용된 시점은 여자의 사회활동이 많아진 1880년대 이후로 더욱 단단한 재료가 사용되고,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고, 메탈로 잠금쇠 기능까지 갖춘 현대 핸드백이 탄생했다. 외국인을 포함해 패션·디자인 등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밝혔다.
지하엔 페라가모·구찌·에르메스·샤넬 등의 핸드백 제작에 사용되는 각종 원피를 만져보고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염소가죽·다랑어·뱀·악어·버팔로 등에 각종 패턴을 넣은 원피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이 곳의 원피는 동대문시장보다 가격이 저렴해 1인 2장으로 구입이 제한된다.
이와 함께 주부들이 30여년 경력의 맹품백 장인 송덕구씨에게 핸드백 제작을 배우는 수업도 진행된다. 송씨는 "핸드백을 만들기 쉽지 않다. 장인이라도 명품백 하나 만드는데 꼬박 이틀이 걸린다"면서 "일반 주부의 경우 1년 정도 배우면 혼자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팁] '시몬느 핸드백박물관', 강남그랜드세일 투어 방문지로 뽑혀
'시몬느 핸드백박물관'은 강남그랜드세일'의 투어 방문지 중 한 곳이다.
강남구는 지난달 구내에서 관광객이 방문할 투어 코스로 박물관들을 선정하고 연계하는 '강남그랜드세일'을 진행했다.투어에 참가한 박물관은 시몬느핸드백박물관을 비롯해 호림박물관·코리아나화장박물관·도산안창호기념관·관세박물관·한국자수박물관·경운박물관·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 등 8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