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재(43)에게 최근 종영한 SBS 수목극 '수상한 가정부'는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이었다. MBC 수목극 '대한민국 변호사(08)' 이후 5년 만에 다시 지상파 미니시리즈 남자 주인공 자리를 따냈고, '한류스타' 최지우(38)의 상대역으로 기대 이상의 호흡을 보여줘 호평을 얻었다. JTBC '아내의 자격(12)'으로 재기에 성공,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사실 이성재의 암흑기는 꽤 길었다. 영화·드라마를 꾸준히 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적을 낸 건 없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보람은 있었다. '아내의 자격'을 시작으로 드라마 섭외가 쏟아졌고 올 한해만 4편의 지상파 드라마를 찍었다. 여기에 힘 입어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 10~20대 팬층까지 생겼다.
이성재는 "다들 알겠지만 그동안 내가 한참 내리막이지 않았나. 하지만 그때 동굴이 아닌 터널을 지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연기 활동을 했다. 언젠가 터널을 지나면 환한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인드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5년 만에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다.
"미니시리즈 남자 주인공으로서 잘 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타이틀롤인 최지우를 잘 서포트해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평소 드라마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좋은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숙제를 풀기 바빴다."
-최지우와의 호흡은 처음이었다.
"일본 원작에 대한 기대감과 최지우와 처음 연기를 한다는 기대감이 동시에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지우와의 연기 호흡은 만족스러웠다. 옆에서 지우의 연기를 보는데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빛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또 지우가 연기한 박복녀 캐릭터에 점점 빠져드는 내 자신을 보면서 지우가 얼마나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멜로물에서 지우의 모습이 썩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연기하면서 최지우란 배우에게 가졌던 선입견과 편견까지 다 사라졌다."
-4명의 아이를 둔 가장 은상철 역이었다. 아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좋았다. 아이들과 아내가 캐나다에 있다. 기러기 생활을 오래해서 외롭고 허전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마음 한 구석이 힐링된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친자식처럼 잘 따라줬다. 나 역시 내 딸들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잘 했다. 막내 딸로 나온 강지우 양은 뽀뽀도 잘해주더라. 촬영장에서 지우양이 뽀뽀를 해주면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님의 안색이 달라졌다. 아역 배우들의 부모님이 질투할 정도로 아이들과 촬영장에서 잘 지냈다. 그만큼 호흡도 좋았다."
-10.2%(닐슨코리아)로 막을 내렸다. 40%대를 기록한 일본 원작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시청률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2%대의 드라마도 한 적 있었고, 시청률에 연연하는 편이 아니라서 난 괜찮았다. 하지만 지우가 시청률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지우에 대해 좋은 기사가 나오면 캡처해서 메시지도 보내주고, '잘하고 있다. 아픔 없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냐'며 응원의 문자도 보냈다. 워낙 시청률이 높은 작품만 했던 친구라 부담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드라마가 일본으로 역수출됐다. 일본에서 반응이 올 것 같은데.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일본에 매우 극소수로 팬이 있긴 하다. 13년 전 영화 '신라의 달밤'이라는 영화를 보고 내 팬이 된 일본 동갑내기 친구가 만든 팬클럽이다. 소규모지만 나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는 분들이다. 그래서 아이돌 가수들의 팬덤이 부럽지 않다."
-올해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 같다. 지난 9월엔 MC에도 도전했다.
"MBC '구가의 서'에서 만난 수지와 '제8회 서울드라마어워즈 2013'의 사회를 봤다. MC가 처음인데 생방송이라서 리허설을 할 때 엄청 떨었다. 다행히 생방송을 시작하니깐 떨리지 않더라. 내가 봐도 처음치고는 괜찮게 사회를 봤다. 색다른 경험을 해봐서 좋았다."
-파트너 복이 많은 것 같다. 심은하를 시작으로 고소영·김희선·최지우·수지 등과 호흡을 맞췄다.
"내가 생각해도 복이 많다.(웃음) 모든 배우들이 다 좋았다. 딱 한 명, 나를 불편하게 했던 여배우가 있다. 바로 김희애누님이다. '아내의 자격'을 할 때 '제발 말을 놓고, 막대해달라'고 얘기했는데 끝까지 날 어려워하셨다. 얼마 전 tvN '꽃보다 누나'에서 희애누님이 승기에게 '승기야'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약간 배신감이 들더라. 나도 누님보다 나이가 어린데 나한테는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았다.(웃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제발 좀 편한 동생처럼 대해달라."
-MBC '나 혼자 산다'에서 8개월 만에 하차한다. 특별한 이유라도.
"파일럿으로 시작해서 정규 편성이 된 후 8개월을 찍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생각지 못한 보너스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1년은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너스는 보너스로 끝나야지 그걸 계속 끌고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프로그램이나 멤버들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 절대 아니다. '나 혼자 산다' 멤버들은 내 삶에 활력소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계속 연락하고 지낼 거다."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좋아한다. 올해는 일주일에 3일, TV를 통해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나 역시 좋았다. 캐나다에 있는 가족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좋아하셨다. 사실 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극장에 못 가신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2년 전에 '제가 드라마를 많이 해서 극장에 안 가도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열심히 드라마를 찍을게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말한대로 이뤄져서 나 역시 좋다."
-왕성히 활동한 만큼,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
"상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모님을 위해서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수상소감으로 아버지를 언급하고 싶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큰 효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