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한증(恐韓症). 중국 축구가 한국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다. 중국 축구대표팀이 한국과의 경기 때마다 패해 만들어진 용어다. 하지만 공한증은 이제 대표팀에서만 통하는 단어다.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가 한국 축구를 위협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 선수 빼내기'에 나서고 있다. 조만간 국가대표 수비수 장현수(22)가 FC 도쿄(일본)에서 광저우 부리로 이적한다. 세부 협상만 남겨두고 있다. 광저우 부리는 장현수 영입을 진행하면서 수비수 곽희주(32·수원)·김주영(25·서울)·황석호(24·산프레체 히로시마) 등도 영입 리스트에 올려뒀다. 수비수 임유환(30·전 전북)도 상하이 선신으로 이적을 확정하고 발표만 남겨두고 있다.
'검증된 한국 수비수' 상한가
슈퍼리그가 원하는 한국 선수의 조건은 '검증된 수비수'다. 2013 시즌 김영권(23·광저우 헝다)·조원희(30·우한 주얼)·김동진(31·항저우) 등이 슈퍼리그 아시아쿼터로 맹활약한 덕분에 한국인 수비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중국 슈퍼리그가 한국 선수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호주·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아시아 쿼터 선수들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훈련 태도가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국가대표 경력이 있고, 뛰어난 실력에 성실함까지 갖춰 슈퍼리그 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국·동남아 등에 국내 선수를 많이 진출시킨 DJH매니지먼트의 이동준 이사는 "중국에서 뛰고 있는 호주 출신 선수가 9명이나 된다. 체격 조건이 좋지만 기술, 스피드 등 나머지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권 등 한국 선수의 성공으로 인해 중국 팀들의 관심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항저우 스카우트와 구단 관계자는 지난 11월 말 비밀리에 K리그 클래식 2경기를 보고 갔다. 항저우는 K리그의 수비수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 이장수(57)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슈퍼리그 감독들은 얼마 전까지 거친 중국에서 빛을 보려면 체격이 좋은 백인 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호주 출신을 선호했다. 그런데 빠르고 기술이 좋은데다가 성실한 한국 선수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K리그 출신 외국인'도 관심
슈퍼리그는 K리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들이 5년 연속 결승에 진출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슈퍼리그의 빅클럽들은 '아시아 무대에 적응이 필요 없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위험 요소를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K리그 선수 영입을 추진 중인 한 중국인 에이전트는 "K리그에서 맹활약한 외국인 선수의 주가가 중국에서 높아지고 있다. 조만간 슈퍼리그로 이적이 이뤄질 선수가 몇 명 있다"고 귀띔했다.
데얀(32·서울)은 장쑤 세인티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시도 중이다. 이적료 40억원에 연봉 20억원 수준이다. 데얀은 2013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장쑤 세인티와 두 차례 맞대결에서 2골을 넣었다. 하지만 데얀이 서울의 상징적인 존재인데다가 과거에도 최용수 서울 감독이 중국 이적을 막고 협력을 약속한 적이 있어 이적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또 베이징 궈안은 은퇴한 프레데릭 카누테(36·말리)의 대안으로 몰리나(33·서울)를 점찍었다. 베이징 궈안은 서울이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맞대결을 펼쳐 꺾은 팀이다. 벨기에 출신 공격수 케빈(29·전북)도 중국 슈퍼리그 다수의 팀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리그, 선수 지키기 고민해야
중국 슈퍼리그는 주로 한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를 노린다. 중국이 노리는 외국인 선수도 데얀·몰리나·케빈 등 K리그 스타 플레이어다. K리그는 최근 스타 선수들 대부분이 유럽·일본·중동으로 진출하면서 '스타 기근 현상'을 겪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한국 선수를 많이 영입하지 않던 중국 리그까지 가세했다. '중국행 러시' 분위기는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리그 스타 플레이어들이 경제 사정이 좋은 일본 J리그로 대거 이동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K리그 구단 입장에서는 선수를 슈퍼리그에 빼앗기면 경기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최근 K리그 대부분의 구단이 운영비를 줄이면서 시장 전체가 얼어붙은 상황이다. 비싼 이적료를 치르고 실력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벌써부터 '내년 시즌 외국인 선수 수준이 뚝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는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K리그 선수까지 중국 슈퍼리그에 빼앗긴다면 타격이 크다.
하지만 선수들의 중국 진출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연봉이 많게는 3~4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국내 정서상 팬들은 선수들의 중국 진출을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돈과 인기를 따라가는 프로 선수라면 중국행이 당연한 선택이 될 수 있다. K리그는 스타 선수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지금이라도 고민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