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답게’를 가르치는 야구부 ②평범한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된다 ③비결은 ‘사위(四位)일체’
덕수고(옛 덕수상고) 야구부는 1980년에 창단했다. 1910년 개교한 학교치고는 출발이 늦었다. 그러다 정수근(37·전 롯데), 김상태(38·전 LG) 등이 뛰던 1994년 황금사자기와 봉황대기에서 우승하면서 고교야구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94년은 정윤진(43) 덕수고 감독이 코치로 부임한 해다.
◇고교 야구에 내일은 없다
“나는 진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스타 선수도 아니었고, 운 좋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상무에 갔다. 제대하고 LG에서 두 달 정도 테스트를 받다가, 부상이 와서 일찍 그만두게 됐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만회하려면 성실과 열정밖에 없겠더라.”
평범한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두 배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했다. 코치로 부임할 당시 정윤진 감독의 나이는 스물 셋. 혈기왕성한 야구 코치는 선수들에게 누구보다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새벽 2시까지 선수들을 다그치며 함께 운동을 했다.
그러나 젊은 패기로만 선수들을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코치로 있으면서 대학을 마쳤고, 덕수고 바로 옆에 있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정 감독은 “체육교육대학원에서 인체역학을 전공했다. 제일 관심이 많았던 분야는 생리학과 대체의학이었다”며 “요즘은 선생님이 잘 모르면 학생들한테 무시를 당하는 세상이다. 내가 많이 알고 있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내친 김에 박사까지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그건 좀 힘들더라”고 했다.
정 감독은 13년간 모교 코치로 근무한 뒤 2007년 감독 자리에 올랐다. 오직 야구밖에 모르던 그는 41살이던 2012년에야 결혼을 했다. 승부를 한 번 걸어보고 싶어 감독직에 매달리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었단다.
정 감독의 열정은 빼곡히 적힌 전력분석표를 봐도 알 수 있다. 직접 상대 경기를 지켜보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일일이 수첩에 메모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분석표를 만들어 경기 전날 선수들에게 나눠준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장에서 세밀한 야구를 한다. 정 감독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경기에 임한단다.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 축구에서도 공 점유율이 높아야 이길 확률이 높은 것처럼 야구에서도 항상 흐름을 우리 쪽에 가져와야 한다. 1점이라도 낼 수 있을 때 내야 한다. 고교 야구는 내일이 없다. 토너먼트에서 한 번 지면 끝 아닌가.”
◇남다른 스카우트 원칙
좋은 선수가 많아야 좋은 팀이 된다. 때문에 고교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수 스카우트라고도 할 수 있다. 정윤진 감독은 직접 중학교 경기를 보러 다닌다. 맘에 드는 선수가 있으면 학교에 찾아가 테스트를 한다. 최근 덕수고의 성적이 좋고, 진학률이 높다보니 테스트를 받기 위해 직접 찾아오는 선수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정 감독은 "우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욕을 가진 선수"를 선발한다. 그는 "신체 조건이 되는데 마인드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대성하기 어렵다"며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야구를 하면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투수의 경우 먼저 신장을 본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선수는 나중에 근력이 붙으면 빠른 공을 던질 가능성이 높다. 또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볼 회전이다. 정 감독은 "볼 회전이 좋아야 스피드가 나온다"며 "웬만하면 직접 공을 받아본다. 회전이 예쁘게 잘 나오면 나중에 근력이 붙었을 때 스피드가 난다”고 했다.
타자는 기본기가 좋고, 잘 뛰는 선수를 선호한다. 정 감독은 선수를 볼 때 직접 몸을 만져본다. 인체역학 전공자답다. 정 감독은 “우선 발목을 만져본다. 근골격을 만져보면 순발력이 좋은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